이슈2022-10-02 18:17

[역사로 보는 선거여론조사] 1987년 대선 ‘여론전쟁의 시작’ ② 선거예측 신화 쓴 박무익 소장

선거예측 신화를 쓴 박무익 소장

현경보

소장님, 오후 6시입니다.”

비서가 인터폰으로 연락을 해왔다. 나는 기자들 앞에 서서 예측 결과를 소리 내어 읽었다.

13대 대선 선거예측 결과를 발표합니다. 기호1번 민정당의 노태우 후보가 34.4%의 득표율을 기록해 1위가 될 것으로 예상되며, 2위는 민주당의 김영삼 후보로 28.7%, 3위는 평민당의 김대중 후보로 28.0%, 4위는 공화당의 김종필 후보로 8.4%를 득표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포인트입니다.”

19871216일 제13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지던 날,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대통령선거 예측 결과가 발표됐다.

   박무익 한국갤럽 회장(1943~2017)
   박무익 한국갤럽 회장(1943~2017)

 

역사의 주인공은 한국갤럽의 박무익1943~2017 소장이었다.

그는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위해 여론조사를 실시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던 시절에 무슨 생각으로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그 예측 결과를 발표까지 했는지 참으로 궁금했다.

그의 회고록에는 여론조사 없이는 민주주의도 없다는 조지 갤럽George Horace Gallup 1901~1984 박사의 말에 용기를 얻어 선거예측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고 쓰여 있다.

평범한 사람이 하기에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대통령선거에서 당선자 예측은 다른 선거와는 다르다. ‘최고의 권력자를 예상한다는 것은 누가 보아도 부담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당시 조사업계를 대표했던 박 소장의 입장에서 보면 예측했다가 아니면 말고 식으로 가볍게 생각할 일은 정녕 아니었다.

박무익 소장은 201774세의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살아 있다면 찾아가서 옛날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 수 있으면 좋으련만 친분만을 쌓았던 지난 시간이 아쉽다.

나는 SBS 기자 시절, 한국갤럽과 20084월 총선 예측조사를 함께 실시하게 되면서 박 소장과 인연을 맺었다. 내가 본 박무익 소장은 여론조사에 대한 소명의식이 뚜렷했다.

늘 웃는 모습으로 사람을 부드럽게 대해 주는 분이었지만, 부드러움의 내면에는 고집도 세고 확고한 신념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박 소장이 1987년 대통령선거 예측을 시도한 것도 여론조사 일을 소명calling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예측

한국갤럽이 발표한 대통령선거 예측 결과는 정확했다. 선거 결과 노태우 후보가 36.6% 득표율로 당선되었는데, 예측 결과는 34.4%2.2%포인트 차이로 당선자를 정확히 예측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의 득표율 순위도 정확했을 뿐 아니라 각 후보의 예측 오차도 1%포인트 미만이었다.

한국갤럽의 예측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시도했던 선거예측이 어떻게 이렇게 정확할 수 있는지 의심이 갈 정도로 완벽했다.

198년 12월 18일자  조선일보

한국갤럽의 대선예측 결과는 대통령선거 이틀 후인 19871218일 조선일보 지면을 통해 공식적으로 공개되었다. 기사 내용에 따르면 조선일보와 한국갤럽 연구소가 공동 여론조사를 6차례 실시했으며, 마지막에 실시한 6차 조사(조사 기간: 1212~14) 결과를 토대로 선거 결과를 예측한 것으로 밝혀졌다.

 

1987년 한국갤럽의 대통령 당선자 예측은 우리나라 여론조사 역사에 새로운 신화가 되었다. 많은 사람들에게 여론조사가 과학적이고 정확하다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요즘이야 여론조사로 대통령 당선자를 예측하는 일이 쉽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 당시로서는 아마도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이다.

1987년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갤럽의 대통령선거 예측조사가 정확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군부독재 시절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겁나서 누구를 찍겠다는 얘기를 함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여론조사가 정확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한국갤럽의 예측은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한국갤럽의 여론조사가 적중했다는 것은 그 당시 우리 국민들이 정치적 입장을 당당히 밝힐 수 있는 용기를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해 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갤럽의 성공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상징하는 일대 사건으로 받아들여졌다.

한국갤럽의 정확한 선거예측은 조사업계 전체가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 대선예측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여론조사 회사들이 매년 급성장했다. 기업의 여론조사와 마케팅 조사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했다. 대선예측을 통해 기업인들에게 여론조사를 통해 과학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기 때문이다.

조사 회사의 숫자도 많이 늘어났다. 1986년까지만 해도 5개 정도밖에 없었던 조사 회사가 1991년에는 30여 개에 이르렀다. 동서리서치, 현대리서치, 코리아리서치센터, 동아리서치, 리서치앤리서치, 미디어리서치, 서울마케팅리서치, 월드리서치 등이 바로 1990년 전후로 생겨난 조사 회사들이다.

하지만 조사 회사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면서 자격을 충분히 갖추지 못한 조사기관들의 난립과 과다경쟁으로 인해 조사품질 저하라는 우려를 낳기도 했다. 이를 감시하고 조정하기 위해 1992년 한국마케팅여론조사협회KOSOMAR가 만들어졌다.

1983년 문화공보부가 공공정책 수립을 앞두고 국민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여론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한 이후, 1987년 대선을 거치면서 신문사들의 여론조사 보도가 급격히 늘어났다. 1987년은 6.29 선언과 그에 따른 12월 대선으로 여론조사업계가 활성화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계속)

 ☞ 1987년 대선 '여론전쟁의 시작'   노태우 승리의 일등공신은 여론조사

관련 태그:
공유하기: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