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2024-01-11 16:56

여론조사 홍수인데… 여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피에르 부르디외 세 가지 문제 제기: 하나의 의견? 동등한 가치? 물어볼 만한 질문?

신창운

4월 총선을 앞두고 여론조사가 넘쳐나고 있다. 그걸 통해 수렴된 여론으로 판세를 가늠하고 전망하는 건 물론이다. 문제는 워낙 많은 조사결과를 접하다 보니 여론조사의 문제점이나 한계에 대해 무신경하거나 무감각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거다. 

알다시피 여론조사를 통해 수집된 조사결과는 근본적으로 한계가 있다. 전체 모집단 중 일부에 해당하는 표본에게 질문해서 얻은 결과이기 때문에 모수, 즉 전체 유권자가 어떻게 응답할 것인가를 추정하는 수치에 불과하다. 그 과정에서 표본 선정과 관련된 표집오차 및 무응답오차, 질문과 응답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오차들이 개입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조사환경이 갈수록 척박해지고 있다. 응답자 접촉부터 순조롭지 않다. 개인 정보 보호에다 프라이버시 침해, 정보통신기술의 급속한 발달로 인해 대면은 물론 전화마저 어려워졌지만, 이를 해결 극복하기 위한 투자와 노력은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그 와중에도 값싸고 편한 방식으로 그저 단순한 수치를 얻는데 불과한 여론조사가 마구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어쩌면 다들 '여론이란 실체가 없는' '여론조사라는 허상'에 목메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박원호 서울대 교수가 ‘선거여론조사의 빛과 그늘’(2021.12)이란 글에서 내린 결론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거 같다. “우리가 충분히 날카롭다고 착각한,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벨 수 없는 값싸고 무딘 칼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현실인지도 모른다.”

조사방법론을 전공한 교수나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표본 추출과 질문지 작성에서 발생하는 오차에 초점을 맞추는 데 비해 여론조사가 안고 있는 근본적 문제점에 주목한 학자가 있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그는 여론조사를 통해 만들어진 여론의 존재를 아예 부정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여론조사가 가정하고 있는 세 가지 전제를 문제 삼고 있다.

첫째, 모든 사람이 제각기 하나의 의견을 갖고 있다는 전제에 대해서다. 달리 말해 하나의 의견을 생산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이란 전제 말이다. 민주주의적 감정과 충돌할 수 있겠지만, 질문에 관심이 없고 의견도 없지만 그저 물어보니까 답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결국 존재하지 않은 여론을 억지로 만들어내기 위해 조사하는 경우가 있다는 얘기다.   

둘째, 모든 의견이 동등한 가치가 있다는 전제에 대해서다. 부르디외는 “현실적으로 동등한 힘을 갖고 있지 않은 여러 의견을 수집하는 일, 즉 여론조사는 사실상 아무런 의미도 없는 인공물을 만들어내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가령, 응답률이 그렇다. 어떤 여론조사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40%로 나왔다면, 전체 국민의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40%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만약 응답률이 10%라면 조사 대상자 90%가 갖고 있는 의견은 백지나 무효로 처리된 셈이다. 국민 10명 중 9명은 대통령 국정 운영에 대해 무관심하거나 답변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지만, 그런 게 전혀 반영되어 있지 않다.  

셋째, 만인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진다는 사실은 하나의 합의, 즉 ‘물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질문’이란 동의를 암묵적으로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제에 동의했다는 근거가 어디에도 없다. 여론조사는 다분히 정치적 인물의 정치적 관심사와 연관되어 있고, 정치적 이해관계에 종속되어 정치 활동의 도구로 이용되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부르디외는 여론의 존재로 인해 이익을 보는 사람들, 즉 권력 엘리트, 대기업, 이익집단이 만들어낸 것이란 견해를 가지고 있다. 게다가 단순한 걸 좋아하는 언론이 이미 단순한 데이터를 더욱 단순화시키는 위험을 안고 있다고 봤다. 여론조사 이해관계자 다수가 그렇듯이 “학문이 차려주는 (여론이란) ‘근사한 식탁’에만 앉아 있을 뿐 학문의 (여론조사란) ‘지저분한 주방’으로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고 싸잡아 비판하고 있다.  

다양한 문제점이나 한계 때문에 여론조사를 폐기해야 한다는 게 아니다. 여론조사를 탓하기 전에 여론조사에 적극 응하는 게 중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그리고 여론조사와 이를 통해 수집된 여론에 대한 맹신이나 과신은 늘 경계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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