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년 사이 더 빨라진 AI…특이점 전망에서 ‘AI 제국’의 권력 구조까지
- 기술은 국경을 넘는데 경제는 블록화…패권·공급망·산업정책의 귀환
- 투키디데스가 2500년 전 남긴 질문…미래를 이해하려면 왜 과거를 읽어야 할까

2026년도 어느새 절반을 넘어 본격적인 하반기로 접어들었다. 그 사이 몇 달 만에도 우리가 그려온 미래의 풍경은 여러 차례 달라졌다. 인공지능(AI)은 질문에 답하고 글과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단계를 지나, 스스로 추론하고 코드를 작성하며 여러 도구를 다뤄 복잡한 업무를 처리하는 쪽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HAI)의 ‘AI 인덱스 2026’ 역시 AI의 능력은 빠르게 향상되는 반면, 이를 평가하고 안전하게 관리할 체계는 그 속도를 충분히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미래가 이미 우리 앞에 도착해 있는 셈이다.
그러나 시선을 기술 바깥으로 돌리면 전혀 다른 방향의 움직임이 보인다. AI와 데이터는 국경을 가볍게 넘나들지만, 세계 경제는 공급망과 자원, 첨단기술을 둘러싸고 다시 국가와 동맹의 경계를 뚜렷이 의식하기 시작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2026년 세계무역을 재편하는 주요 요인으로 지정학적 분절, 공급망 변화, 강화되는 국가 규제 등을 꼽았다. 자유무역 시대가 빛을 잃어가는 대신 가격과 효율만을 앞세우던 세계화에 경제안보와 산업 경쟁력이라는 새로운 조건이 더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기술은 전에 없던 속도로 변하는 와중에 인간과 국가는 왜 자꾸만 익숙한 선택을 되풀이하는 것일까. 약 2500년 전 아테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쓰면서, 과거에 벌어진 일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 앞으로 인간사에서 비슷한 모습으로 되풀이될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인간의 본성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한, 권력과 두려움과 욕망이 만들어내는 역사의 패턴 역시 다시 나타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전에 없던 미래를 이해하려면 가장 새로운 책이 필요하다. 그러나 인간과 국가가 왜 비슷한 선택을 되풀이하는지 알고 싶다면, 오히려 오래된 책을 다시 펼쳐야 할지도 모른다. 특이점을 말하는 미래학자의 전망에서 시작해 AI 산업의 권력 구조를 추적한 르포, 기술 패권을 둘러싼 경쟁을 지나 2500년 전 전쟁사와 19세기 경제 고전에 이르기까지. 2026년 하반기, 빠르게 변하는 것과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것을 나란히 놓고 볼 다섯 권의 책을 골랐다.
인간은 정말 ‘특이점’을 향해 가고 있을까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 (레이 커즈와일, 비즈니스북스, 2025)

AI의 미래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특이점(Singularity)’이다. 인간이 만든 기술의 지능이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고, 기술 발전 자체의 속도마저 급격히 빨라지면서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미래를 예측하기 어려워지는 시점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개념을 대중적으로 널리 알린 대표적 인물이 미래학자이자 발명가 레이 커즈와일이다.
‘마침내 특이점이 시작된다’는 커즈와일이 2005년 ‘특이점이 온다’를 내놓은 지 약 20년 만에, 그사이 현실에서 일어난 기술 변화를 되짚으며 자신의 전망을 다시 점검한 책이다. AI와 컴퓨팅, 생명공학, 나노기술이 어떻게 결합해 인간의 능력과 삶을 바꿔놓을지에 대한 그의 장기 전망이 이어진다. 국내에서는 2025년 비즈니스북스를 통해 출간됐다.
커즈와일이 바라보는 기술의 역사는 직선이라기보다 가속하는 곡선에 가깝다. 컴퓨팅 능력과 정보기술이 서로를 밀어 올리면서 변화의 간격은 점점 짧아지고, 어느 순간에는 인간의 생물학적 한계와 기계 지능의 경계마저 흐려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가 그리는 미래에는 AI뿐 아니라 인간의 수명 연장, 뇌와 컴퓨터의 연결, 생명공학과 나노기술의 결합까지 포함된다.
물론 그의 예측을 이미 정해진 미래처럼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특이점이 언제 올지, 인간과 기계가 얼마나 결합할 수 있을지를 둘러싸고는 여전히 과학적·철학적 논쟁이 이어진다. 오히려 이 책을 흥미롭게 읽는 방법은 20여 년 전 그가 그렸던 미래와 지금의 현실을 나란히 놓아보는 것이다. 무엇은 예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됐고, 무엇은 여전히 전망에 머물러 있는가.
2026년, 하루가 다르게 빨라지는 AI를 지켜보는 독자에게 이 책이 던지는 가장 큰 질문도 여기에 있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것은 기술 그 자체의 수준일까, 아니면 변화와 변화 사이의 간격이 갈수록 짧아지고 있다는 사실일까.
AI를 움직이는 것은 알고리즘만이 아니다
‘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 (카렌 하오, 생각의힘, 2026)

레이 커즈와일의 시선이 기술이 어디까지 발전할 수 있는지를 향한다면, 저널리스트 카렌 하오는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본다. 그 기술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자본과 데이터, 컴퓨팅 자원과 에너지, 노동은 대체 어디서 오며, 결국 그것을 통제하는 사람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다.
2026년 국내에 출간된 ‘AI 제국: 권력, 자본, 노동’은 오랜 기간 AI 산업을 취재해온 카렌 하오가 오픈AI를 중심축 삼아 오늘날 생성형 AI 산업이 성장해온 과정을 추적한 책이다. 한국어판은 생각의힘에서 2026년 2월 출간됐다.
책 제목에 등장하는 ‘제국’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하오는 첨단 AI를 만들기 위해 거대한 데이터와 컴퓨팅 인프라뿐 아니라 토지와 전력, 물, 데이터 가공 노동 등 현실 세계의 막대한 자원이 필요하다는 점에 주목한다. AI는 화면 속에서 작동하는 무형의 기술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세계 곳곳의 데이터센터와 공급망, 노동시장 위에 세워진 산업이라는 것이다. 원서 출판사 역시 이 책이 AI 경쟁 뒤에 놓인 토지·물·노동 등 자원 문제와 권력 집중을 다룬다고 소개한다.
그래서 이 책은 AI의 성능 경쟁보다 그 성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구조를 들여다보게 한다. 더 강력한 AI를 만들려면 더 많은 연산 자원과 전력이 필요하고, 이를 확보하려면 그만큼 더 큰 자본이 필요하다. 결국 자본과 컴퓨팅 능력을 가진 소수의 기업에 기술 개발의 주도권이 집중될 가능성도 함께 커진다.
다만 저자의 문제의식이 AI 산업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책에 담긴 개별 사례를 산업 전체와 곧장 동일시하기보다는, 기술의 발전 뒤에서 누가 비용을 치르고 누가 결정권을 쥐는지를 묻는 관점으로 읽는 편이 좋다.
AI의 미래가 궁금할 때 우리는 흔히 새로운 모델의 성능부터 먼저 살핀다. ‘AI 제국’은 거기서 한 걸음 물러나 다시 묻는다. 미래를 결정짓는 것은 가장 뛰어난 알고리즘일까, 아니면 그 알고리즘을 개발하고 운용할 자원을 가진 쪽일까.
기술 경쟁은 어떻게 ‘패권 경쟁’이 됐을까
‘패권’ (파미 올슨, 문학동네, 2025)

AI 경쟁이 연구실을 벗어나 거대한 산업 경쟁으로 번져가는 과정을 더 가까이서 지켜보고 싶다면, 파미 올슨의 ‘패권’을 펼쳐볼 만하다.
2025년 국내 출간된 이 책은 샘 올트먼과 데미스 허사비스를 중심축으로, 오픈AI와 딥마인드가 성장해온 과정과 생성형 AI 시대의 경쟁 구도를 추적한다. 기술 그 자체보다는 그것을 개발하는 인물과 조직, 투자자와 빅테크 기업들이 서로 얽히면서 AI 경쟁이 어떻게 거대한 산업의 권력 경쟁으로 번져갔는지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가진 기계를 만들 수 있는가’라는 연구자의 순수한 질문에서 출발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막대한 컴퓨팅 자원과 자본이 필요해지면서, AI 연구는 점차 기업의 사업전략과 투자자의 자금, 국가의 산업정책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됐다. 원서 출판사도 이 책을 생성형 AI의 미래를 통제하려는 이들의 경쟁을 담은 기록으로 소개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앞선 두 권이 한 줄로 연결된다. 커즈와일이 기술 발전의 속도를 이야기한다면, 하오는 그 기술을 가능하게 하는 자원과 권력을 묻는다. 그리고 올슨은 그 자원과 권력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실제 산업 현장에서 어떤 방식으로 펼쳐져 왔는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 질문의 범위는 자연스럽게 기업을 넘어 국가로 넓어진다. AI 기술을 확보하려는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반도체와 데이터센터, 에너지와 인재 역시 전략적 자원이 된다. ‘누가 더 좋은 모델을 만드는가’의 문제는 어느 순간 ‘누가 미래 산업의 규칙과 표준, 핵심 인프라를 먼저 선점할 것인가’의 문제로 바뀐다.
그렇다면 이런 경쟁은 정말 AI 시대에 처음 나타난 현상일까. 새롭게 힘을 얻은 세력과 기존의 강자, 그들을 둘러싼 동맹과 불안이 부딪히는 모습은 놀랍게도 2500년 전 기록 속에서도 고스란히 발견된다.
강자가 커질수록 상대는 왜 두려워하는가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키디데스, 현대지성, 2026)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에는 오늘날의 국가 체제와는 다르지만,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는 수많은 폴리스가 존재했다. 그 중심에는 해상 세력을 기반으로 성장한 아테네와 육상 강국 스파르타가 있었다.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를 중심으로 한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대립은 결국 오랜 전쟁으로 번졌다.
아테네의 장군이자 역사가였던 투키디데스는 이 전쟁을 직접 겪고 기록했다. 그가 남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단순한 전쟁 연대기가 아니다. 국가는 왜 전쟁을 선택하는지, 힘의 변화는 왜 두려움을 낳는지, 동맹은 어떻게 움직이며 위기 속에서 인간의 판단은 어떻게 흔들리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투키디데스가 이 책을 쓴 이유는 지금 다시 곱씹어볼 만하다. 그는 과거의 사건을 정확히 알고 싶어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기록이 쓸모 있기를 바랐다. 인간사의 미래 역시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과거와 닮은 모습으로 되풀이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책을 한때의 박수를 얻기 위한 글이 아니라, 후세가 두고두고 참고할 수 있는 ‘영원한 소유물’로 남기고자 했다.
물론 고대 아테네와 스파르타를 오늘날 특정 국가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다. 시대도, 정치체제도, 경제구조도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그 안에서 되풀이되는 구조만큼은 눈여겨볼 수 있다.
새로운 강자의 부상은 기존 강자에게 불안을 안기고, 그 불안은 다시 군사력과 경제력의 강화로 이어진다. 세력이 커질수록 주변 국가들은 어느 편에 설지 선택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동맹은 그만큼 더 단단해진다. 상대의 행동을 방어가 아닌 위협으로 읽기 시작하면, 불신은 또 다른 큰 경쟁을 부른다.
AI와 첨단기술을 둘러싼 오늘날의 경쟁이 역사와 완전히 같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기술의 얼굴은 달라져도, 힘과 두려움과 국익과 동맹이 작동하는 방식에는 과거를 통해 곱씹어볼 대목이 적지 않다.
AI 시대에 2500년 전 책을 다시 펼쳐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미래 기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최신 보고서가 알려줄 수 있지만, 그 기술을 손에 쥔 인간과 국가가 어떻게 행동할지는 오히려 오래된 역사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자유무역을 외치던 세계는 왜 다시 ‘우리 산업’을 말할까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 (프리드리히 리스트, 지식을만드는지식, 2016)

투키디데스가 국가 사이의 힘과 두려움을 들여다봤다면, 19세기 독일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전혀 다른 질문을 던졌다. 자유무역은 정말 언제나 모든 국가에 똑같이 유리한가.
1841년 출간된 ‘정치경제학의 민족적 체계’에서 리스트는 경제를 단순히 지금 당장 어떤 상품을 가장 싸게 살 수 있는가의 문제로만 보지 않았다. 그는 국가가 장기적으로 산업과 기술, 인력과 제도를 축적해 미래의 ‘생산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봤다.
리스트를 단순히 ‘보호무역을 주장한 경제학자’로만 읽으면 그의 생각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그는 제조업과 농업을 포함한 국가의 생산 능력을 중요하게 여겼고, 발전 단계가 다른 국가들 사이에 무조건 동일한 조건의 자유무역을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빚어지는지를 고민했다. 그의 논의 한가운데에는 지금 소비할 상품의 가격뿐 아니라, 미래에 한 국가가 무엇을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인가라는 물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18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질문은 다시 낯설지 않게 들린다. 반도체와 AI 컴퓨팅 인프라, 에너지, 배터리, 핵심광물처럼 산업 전체를 좌우하는 분야에서는 가장 싼 곳에서 만들어 수입하는 것만이 더 이상 유일한 기준이 되지 않는다. 공급이 끊겼을 때의 위험과 국가안보, 미래 산업 경쟁력까지 함께 따져야 하기 때문이다. 2026년 세계무역에서도 지정학적 긴장과 공급망 변화, 국가 규제 강화가 교역과 투자 결정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고 세계가 다시 완전한 자급자족이나 폐쇄경제로 돌아가고 있다고 보는 것도 무리다. 오늘날의 변화는 세계화의 단순한 종말이라기보다, 무엇을 세계에 맡기고 무엇을 자국이나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 안에 남겨둘지를 다시 계산하는 과정에 가깝다.
그래서 지금 리스트를 읽는 것은 보호무역의 정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자유로운 교역이 만들어내는 효율과, 국가가 지키려는 생산 능력 사이에 어떤 긴장이 존재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다.
AI 모델은 몇 초 만에 국경을 넘나들지만, 그것을 작동시키는 반도체와 전력, 데이터센터와 핵심자원은 결국 현실 세계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어야 한다. 기술이 디지털화될수록 오히려 그것을 떠받치는 물리적 자원과 국가의 산업 역량이 더 중요해지는 역설인 셈이다.
2026년의 미래를 읽는 데 필요한 책이 반드시 2026년에 나온 책이어야 할 이유는 없다. 레이 커즈와일은 기술이 얼마나 빨리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카렌 하오는 그 미래를 만드는 과정에서 누가 자원과 권력을 쥐는지를 추적하고, 파미 올슨은 AI를 둘러싼 경쟁이 어떻게 거대한 패권 경쟁으로 번져갔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서 시간을 거꾸로 돌리면 투키디데스가 등장한다. 새로운 힘의 등장과 기존 강자의 두려움, 동맹과 국익의 충돌을 그는 이미 2500년 전에 기록해두었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리스트는 19세기에 국가가 자유로운 교역과 자국의 산업 역량 사이에서 무엇을 고민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기술은 언제나 전에 없던 모습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것을 둘러싼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국가 간의 경쟁까지 매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어쩌면 미래를 읽는 방법은 두 가지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너무 빠르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는 일, 그리고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좀처럼 달라지지 않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일. 이미 절반이 넘게 훌쩍 지나간 2026년, 최신 AI 책과 2500년 전 고전을 한 책상 위에 나란히 펼쳐볼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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