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조사협회(KORA)가 23일 전화면접으로만 정치선거 여론조사를 하겠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화제가 되고 있다. 이례적으로 이를 보도한 기사가 50여 개에 달했다. 녹음된 기계음을 불특정 다수에게 대량 전송해 조사하는 자동응답시스템(ARS) 방식은 비과학적일 뿐 아니라 여론조작에 활용될 수 있기에 배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조사협회 ‘선언’이 무색할 정도로 실제 현장에선 ARS 활용이 압도적이다. 특히 여의도 정치권에서 그렇다. 내년 총선 관련 여론조사는 말할 것도 없다. 낮은 응답률, 제멋대로의 응답 등 몇몇 한계에도 불구하고 적은 비용으로 자주 할 수 있어서 추세 파악이 수월하고, 정치 쟁점이나 선거에 관심 많은 유권자를 겨냥할 수도 있다.
전화면접은 상대적으로 조사방법 기본에 충실한 편이다. 높은 응답률도 그렇지만, 엄격한 조사설계와 표집틀에 따라 조사자가 응답자를 선정하고 조사를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정치 고관여층 중심의 자발적 응답자 위주의 조사는 아무나에 의해 아무렇게나 실행될 가능성이 높고, 표본을 통한 여론조사의 대표성 훼손이 불가피하다고 본다.
결국 전화면접과 ARS 중 어떤 방법이 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불행히도 평소 여론조사에선 확인할 길이 없다. 모집단, 즉 응답자 전체에 대한 결과를 모르기 때문이다. 선거를 실시해야만 정확성과 신뢰성 평가가 가능하다. 가령, 2주 전에 있었던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처럼 최종 득표율이란 결과가 있어야 한다.
참고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2017년 대한정치학회에 의뢰한 ‘유무선 전화 비율 등 바람직한 여론조사방법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대통령 선거 여론조사의 경우 ARS에 비해 전화면접이 더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근거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한다.
정치선거 여론조사의 문제점은 자료수집방법을 넘어서고 있다. 전화면접 대 ARS 문제가 아니란 얘기다. ‘사실 여부 관심 없다, 여론 만드는 여론조사’는 지난해 말 어떤 신문의 특집기사 제목이었다. 여론을 만들어서 영향력을 미치고자 하는 데 여론조사가 이용되고 있으며, 정파성이 강한 저질 가짜뉴스라도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협회 선언을 계기로 새로운 규제 입법이 만들어지는 것에 대해선 반대 입장을 가지고 있다. 전화면접은 물론 ARS 역시 나름의 특징과 쓰임새가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설치되어 있는 선거여론조사심의위를 통해 감독 및 규제가 가능할 것이다. 다만 별도 기준을 마련해 전화면접과 ARS를 분리해서 관리하는 것이 어떨까 싶다.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것, 나아가 이런 결과여야 한다는 당위론에 배치되는 여론조사는 뭔가 문제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다. 과학적인 방식을 통해 진실에 가까이 가는 것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결과를 원하는 상황에선 여론조사 문제점이 개선되더라도 이에 대한 논란이 무한 재생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암울한 전망이 가능하다.
그런 점에서 한국조사협회장의 기대와 달리 정치선거 여론조사의 신뢰성 제고가 가능할지 회의적이다. ARS 근절 의지만 하더라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향후 조정 여지를 남겼지만, 가령 휴대전화 가상번호 방식에서 10% 이상, 전화번호 임의걸기(RDD) 방식에서 7% 이상을 달성하겠다는 응답률도 사실은 협조율이다. 그마저 조사환경 악화로 하락할 가능성이 높다.
이번 한국조사협회 선언이 전화면접 대 ARS 구도로 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각자의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은 물론 서로 긴밀히 협조하는 방안이 우선되어야 한다. 조사환경 악화에다 여론조사 규제를 위한 새로운 입법 시도에 머리를 맞대고 함께 맞서야 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