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언론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1주년 여론조사를 실시해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한국갤럽에 여론조사를 의뢰했는데, 지난 7~8일 이틀 동안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보도했다.
중앙일보-한국갤럽의 조사결과를 보면서 조사 주제, 즉 질문 문항을 둘러싸고 여론조사 의뢰자인 중앙일보와 조사기관이 한국갤럽 사이에 적지 않은 긴장과 갈등의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이러한 싸움은 대개 여론조사를 의뢰하는 '갑'의 입장에 있는 언론사의 승리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에 등록된 여론조사 질문지를 자세히 들여다 보니 양측의 '기싸움' 흔적이 눈에 띈다.
두 가지 점만 언급하고자 한다. 첫째, 사회적 바람직성(Social Desirability) 질문이 결국 1면 톱을 장식했다. ‘윤 정부 1년… “한.미.일 안보협력 찬성” 72%’라는 헤드라인이 그것이다. “한국, 미국, 일본 세 나라가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것”에 대해 질문한 결과 ‘매우 동의’ 40.2%, ‘어느 정도 동의’ 32.0%라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이 문항은 누구나 동의할 수밖에 없는 질문을 해서 뻔한 답을 얻은 게 문제다. 전통적인 우방 국가들이 안보를 위해 협력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여태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지속되어야 한다. 이 질문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4명 중 1명가량(23.4%)에 달한 것이 오히려 이상해 보인다.
둘째, 대통령 직무수행 평가 척도와 재질문에 대해서다. 한국갤럽은 다른 조사기관과 달리 대통령 직무수행에 대한 평가를 2점 척도로 측정해왔다. 가장 최근 갤럽이 자체적으로 실시한 조사를 보면 긍정평가 33% 대 부정평가 57%였다.
그런데 이번 중앙일보와의 조사에선 4점 척도를 사용했다. 그 결과 긍정 38.5%(매우 잘하고 있다 16.7%, 잘하고 있는 편 21.7%), 부정 57.6%(잘못하고 있는 편 19.1%, 매우 잘못하고 있다 38.5%)가 나왔다. 직전의 자체 조사와 비교해 보면 의도한 건 아니라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부정 평가는 비슷한데, 긍정 평가가 5.5%p 높게 나온 셈이다.
한국갤럽은 평소 국정수행 평가 질문을 할 때 1회 재질문을 통해 ‘어느 쪽도 아니다’, ‘잘 모르겠다’는 응답 비율을 줄인다. 그 결과 2점 척도로 질문한 한국갤럽 자체 조사에서는 ‘모름/무응답’이 10% 정도 나오는데, 이번에 4점 척도로 질문한 중앙일보-한국갤럽 조사에서는 ‘모름/무응답’ 비율이 4%로 줄어들었다. 한국갤럽이 평소와 다르게 국정수행 평가 질문에서 왜 4점 척도를 사용하였는지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그 밖에도 한국갤럽은 평소에 정기적으로 발표하는 조사결과 수치에 소수점 이하 표시를 하지 않는다. 가령, 긍정평가 33%, 부정평가 57%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선 소수점 이하 첫째 자리(긍정 38.5%, 부정 57.6%)까지 표기하고 있다.
한국갤럽은 우리나라에서 역사가 가장 오래된 대표적인 여론조사 회사로서 조사에 대한 철학과 소신도 남다르다. 그런데 앞서 보았듯이 '이런 것'쯤이야 여론조사 의뢰자인 '갑'이 원하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는 것인가?
사회적 바람직성 질문, 응답 척도 변경 등 한국갤럽이 평소 조사에 대한 소신과는 다른 모습을 보면서, 조사를 의뢰받는 '을'의 입장에 서면 어쩔 수 없이 '갑'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묻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