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인이 1994년 초판을 출간한 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당시 50만부가 팔리면서 커다란 화제였다. 같은 제목의 시는 투쟁의 시대 80년대를 거치면서 지난했던 과거에 대한 추억과 회한을 토로하고 있다. 그러면서 시의 마지막 부분을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로 맺고 있다.
4일부터 총선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다. 그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여론조사 잔치가 성대했다. 관심 지역구를 중심으로 수백 개의 여론조사가 실시 공표됐다.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에 등록된 것만 그렇다. 비공표용 및 비공식적인 여론조사까지 합치면 엄청난 규모일 것이다.
여야를 비롯한 각 정당과 후보, 정치 평론가들은 위아래 상당한 수준의 오차범위를 감수해야 하는 500명 표본 대상의 여론조사 수치에 일희일비했다. 그보다 더 많은 오차범위를 안고 있는 하위 표본에서의 지지율 격차에도 열광하거나 절망했다. 언론은 이를 따라잡는 경마식 보도에 열중했고, 대목을 누리기에 바빴던 일부 메이저 조사기관에선 쏟아지는 주문을 거절하기도 했다.
최근 유시민이 시민언론 민들레에 ‘선거여론조사는 반드시 틀린다’는 칼럼을 기고했다. 민주당 지지자를 대상으로 투표를 독려하고 있는 결론 부분만 빼면, 여론조사 전문가 영역을 침범하고 있는 셈이다.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지만, 뭐 그럴 수 있다고 본다. “여론이 유동적이고, 모집단 확정은 물론 완벽한 표본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틀린다고 했지만, 정작 본인도 그런 여론조사에 입각해 판세 분석에 열중한 적이 있다.
딱 거기까지였다. 잔치는 끝났다. 야당이 180석을 넘길 수 있다거나 여당이 100석을 얻지 못할 수 있다는 건 다 지난 일로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때 그 시절 얘기였을 뿐이다. 소위 정치 평론가를 중심으로 열심히 분석 해석하고, 또 왕년의 예측 경험을 토대로 자신이 맞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선거 한 달 전, 심지어 몇 개월 전 시점에서 총선 판세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건 마치 1936년 미국 갤럽의 성공 사례에서 보듯 행운이 따라야 가능한 것이다.
최 시인의 ‘서른, 잔치는 끝났다’는 시엔 “그러나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라는 표현이 두 번 나온다. 4월 10일 투표일 저녁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다. 총선 이전에 실시된 수많은 여론조사에 왜 그렇게 일희일비했을까 후회하는 상황 말이다. 단언할 수 없지만, 여태 우리가 봐왔던 여론조사와 전혀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다.
그런 여론조사를 왜 했느냐고. 유 작가 말처럼 틀려도 유용하기 때문이다. 선거 여론조사는 누가 맞고 틀렸는지, 즉 정확성을 가리는 게 아니라 누가 실제 결과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갔는지 알아보는 게임이다. 완벽한 건 아니지만 계속 관심을 기울일 만큼 훌륭하다. 문제는 그런 여론조사에 기반해 지나친 확신을 가진다는 거다. 만약 여론조사 한계를 인식하고 상세 내용에 관심을 기울인다면, 여론조사에 기반한 예측이 설사 틀렸다 하더라도 충격을 덜 받을 수 있다.
여론조사 공표 금지란 깜깜이 구간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여론조사 잔치가 끝나지 않았다고 보는 사람도 있다. 선거 당일 실시 공표될 방송사 출구조사 얘기다. 지난 2022년 대선 때의 박빙 상황에서도 출구조사가 정확하지 않았느냐고 기대를 표명하기도 한다. 그러나 1개 선거구인 대선과 254개 지역구 총선을 함께 비교할 수 없다. 대선에서 정확성을 뽐냈던 출구조사가 총선에선 정당별 의석수를 한 번도 제대로 예측한 적이 없다.
총선 여론조사든 출구조사든 1주일만 지나면 잔치도 끝이다.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여론조사를 둘러싸고 뜨겁게 치고받았던 언론과 정치인의 관심부터 차갑게 식는다. 여론조사 관련 문제점 등 설거지 혹은 뒤치다꺼리는 고스란히 선관위와 학계 몫으로 남을 것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여론조사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도대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물을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