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한 때 재미로 즐겨보는 혈액형별 심리테스트는 20세기 초 유럽에서 시작됐다. 당시 유럽에는 "백인이 다른 인종보다 우월하다"는 우생학이 유행하면서, 이를 이론적으로 뒷받침하는 ABO 혈액형이 도입됐다.
1910년대 독일 하이델베르크대 둥게룬(Emile von Dungern) 박사는 ‘혈액형의 인류학’이라는 논문에서 혈액형에 따른 인종 우열 이론을 발표했다. 순수 유럽민족인 게르만족의 피가 A형이 대부분이고, B형은 검은 머리, 눈동자의 아시아 인종에게 많다는 설명과 함께 A형이 많은 게르만족이 B형이 많은 동양인보다 우수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인종별 혈액형 분포를 보면 서양 백인들의 80~90%는 A형이나 O형을 가지고 있다. 아시아권의 우리나라나 일본의 경우 서양인에 비해 A형, B형, O형의 분포가 고르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독일인, 유럽인이 아프리카나 아시아인보다 더 뛰어나다는 사실을 혈액형 분포를 기준으로는 과학적인 증명이 불가능했다.
그 후 1927년 일본 심리학자 후루카와가 300여명의 소규모 표본조사를 근거로 <혈액형에 의한 기질연구>라는 논문 발표를 통해, 혈액형과 성격이 상관관계가 있음을 주장했지만 과학적 지지를 받지 못했다.
그러던 중 1971년 일본 작가 노미 마사히코가 쓴 <혈액형 인간학>이란 책이 인기를 끌면서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커지고 회사 채용 이력서에 혈액형을 쓰는 칸이 생길 정도로 유명해졌다.

이처럼 혈액형의 구분 기준이 '우열'에서 '성격'으로 바뀐 이같은 주장이 우리나라로 넘어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혈액형과 성격이 관계가 있다’는 믿음이 전파되고 한 때 혈액형에 따른 성격 특징 파악이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A, B, O, AB형의 성격에 대해 "A형은 소심하고, O형은 화끈하고, B형은 다혈질에, AB형은 또라이"라는 근거도 없는 설명이 떠돌아 다니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다면 과연 혈액형에 따라 성격의 차이가 생길 수 있을까?
한국여론평판연구소가 여론전문 미디어 <퍼블릭오피니언>과 함께 지난 달 28~31일 나흘 동안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027명을 대상으로 혈액형과 성격에 관한 인식조사를 실시했다.
조사결과, 우리 국민들의 혈액형은 A형 34%, O형 30%, B형 25%, AB형 12% 등의 순으로 분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혈액형과 성격의 관계를 분석하기 위해 조사대상자의 성격을 '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 '논리적인가 감성적인가', '계획적인가 즉흥적인가' 등 3가지 차원에서 물어보았다.
그 결과 우리 국민의 66%가 자신이 '내성적'이라고 답했고, 외향적이라는 사람은 34%로 나타났다. 또한 자신이 논리적이라는 사람은 59%, 감성적이라는 사람은 41%, 그리고 계획적이라는 사람 66%, 즉흥적이라는 사람 34%로 각각 분류됐다.
이번 조사 결과로만 보면 우리 국민들은 자신이 외향적이기 보다는 내성적, 감성적이기 보다는 논리적, 즉흥적이기 보다는 계획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혈액형과 이들 3가지 차원의 성격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분석결과, A형의 경우 내성적, 논리적, 계획적이라는 응답이 다소 높게 나타났지만,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B형의 경우도 외향적, 감성적, 즉흥적이라는 응답이 상대적으로 많았지만, 이 또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차이는 아니었다.
O형과 AB형의 경우는 혈액형에 따른 3가지 차원의 성격 사이에 는 거의 차이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성격 이외에 성별, 연령별. 소득별, 정치성향 등의 변수에서 혈액형별로 유의미한 차이가 있는지 분석해 보았지만 유의미한 차이를 찾아볼 수 없었다.
다만, 흥미로운 사실은 거주하는 주택유형과 혈액형 사이에 유의미한 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형과 O형의 경우 아파트에 거주하는 비율이 다소 많았으며, 이에 비해 B형과 AB형의 사람들은 단독/연립/다세대 주택에 거주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
이같은 결과는 혈액형과 성격 사에서는 유의미한 관계를 찾아볼 수 없었지만, 혈액형과 개인의 주택 선호 사이에는 의미있는 관계가 있을 수도 있다는 '잠정적 가설'을 제기함으로써 추후 검증해 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