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정개특위)를 중심으로 현행 선거구제 개편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지난 달에는 선거제도 개편을 논의하기 위한 국회 전원위원회를 개최해 100명에 가까운 여아 국회의원들이 난상토론을 벌였다.
전원위원회 토론을 거치며 다양한 주장과 의견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여야를 아우르는 합의안 도출과는 거리가 멀었다.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입장에는 공감하지만 구체적인 개선안에 대해선 여야는 물론이고 각당 내부에서조차 이견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그렇다면 유권자로서 우리 국민들은 선거구제 개편에 대해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까?
한국갤럽이 지난 3월 21~23일 실시한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 정수와 관련한 사안에 대해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57%로 ‘현행 유지’(30%)와 ‘늘려야 한다’(9%)는 견해보다 훨씬 높게 나타났다.
반면에 정개특위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5월 6일과 13일 두 차례 실시한 공론조사에 따르면, 국회의원 정수 확대는 13%에서 33%로 늘어난 반면, 축소 의견은 65%에서 37%로 줄어들었다. 공론조사 결과 국회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과 줄여야 한다는 의견이 각각 33%, 37%로 비슷해진 셈이다.

앞서 한국갤럽이 실시한 '여론조사'란 무엇이고 한국리서치의 '공론조사'는 무엇이길래 국회의원 정수에 대한 유권자들의 의견이 이처럼 달라진 것일까?
'여론조사'는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들을 무작위로 선정해서 선거제도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조사방식이다. 이에 비해 '공론조사'는 불특정 다수의 유권자들을 무작위로 선정한 후 이들을 대표하는 일정한 집단을 재구성해서 선거제도 관련 정보를 충분히 제공하거나 질의 응답과 토론 등 숙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선거제도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는 조사방식이다.
보통 여론조사에 응답하는 사람들은 선거제도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답변할 수도 있다는 '여론조사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도입된 것이 바로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인 것이다. 공론조사는 일반 여론조사보다 심층적이고 숙성된 의견 수렴이 가능하다.
공론조사는 지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기관이나 자치단체들이 갈등사안에 대한 정책결정을 시도할 때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유행처럼 번졌다. 문재인 정부 초기 신고리 5,6호기 원전 재개, 대입제도 개편안 등 찬반이 엇갈리는 이슈에 대한 의사결정을 위한 공론조사가 대표적인 사례다.
학계에선 개별 이슈와는 관계없이 대체로 공론조사에 긍정적이다. 숙의나 토론 과정을 거쳐 현안에 대한 다양한 여론이 타협 조정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합리적 공론을 국시로 삼아야 한다"는 율곡의 주장을 인용하거나, 나아가 대중이 공론장의 주체라면 정부는 공론의 수용자여야 한다는 입장에서 공론조사를 옹호한다.
하지만, 공론조사가 만능은 아니다. 상대적으로 '무거운 문제'였던 신고리 원전 공사 재개는 질문이 분명했기에 답을 찾기가 수월했지만, 대입제도 개편안은 워낙 문제가 어렵고 복잡해서 다양한 입장의 의견을 수렴하기도 어렵고 그 해결 방안도 분명치 않았다. 공론화 과정이 다양한 의견이나 생각을 정리하는데 도움이 될 순 있지만, 선명한 결론이나 대안을 제시해 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준 셈이다.
또한 공론조사의 결과에 대한 긍정적 혹은 부정적 입장이 개별 현안에 따라 갈리는 점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공론조사 이전에 이미 정치화된 이슈들이 그렇다. 이번 선거제도 개편에 관한 공론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제도에 대한 공론조사 결과를 한겨레,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등에서 적극적으로 보도한 것과는 달리 조선일보, 중앙일보 등에서는 관련 보도가 눈에 띄지 않는다.
숙의형 공론조사가 권장할 방법이긴 하지만 그 결과가 전적으로 바람직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건 경계할 필요가 있다. 여론조사든 공론조사든 그저 자신의 입장에서 유리한 결과만 옳은 것으로 받아들이려는 '부조리한 현실' 에서 '합리적 이성'은 존재하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