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읽는 책

라이프2026-09-30
[지금, 다시 읽는 책] 우리가 읽은 문장은 정말 작가의 문장이었을까…‘세계 번역의 날’ 다시 읽는 번역문학
  • 같은 원작도 번역가 따라 달라지는 리듬과 뉘앙스…‘정답 없는 선택’이 만드는 세계문학
  • 인터내셔널 부커상은 작가와 번역가가 함께 수상…번역 자체가 문학적 성취로 평가받는 시대
  • AI는 의미를 옮길 수 있지만 ‘작가의 목소리’까지 옮길까…문학번역의 다음 질문
세계 번역의 날을 맞아, 서로 다른 언어와 문화를 잇는 번역의 가치를 다시금 확인해본다. (이미지=AI로 생성)

세계문학을 읽다 마음에 남은 문장에 밑줄을 긋는다. 몇 번이고 되읽다가 노트에 옮겨 적기도 한다. 그런데 한 가지 생각해볼 문제가 있다. 우리가 기억하는 그 한국어 문장은 정말 작가가 쓴 문장일까.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어로, 올가 토카르추크는 폴란드어로, 주제 사라마구는 포르투갈어로 소설을 썼다. 한국 독자가 만난 단어와 문장, 말투와 호흡은 번역가의 판단을 거쳐 만들어졌다. 원문 한 단어에 대응하는 한국어가 여럿이라면 하나를 골라야 하고, 존대가 없는 언어의 대화에는 등장인물의 관계를 따져 높임말의 정도를 정해야 한다. 원문 특유의 긴 문장을 그대로 끌고 갈지, 한국어 독자가 읽기 쉽도록 나눌지도 선택의 영역이다.

오늘(9월 30일)은 ‘세계 번역의 날(International Translation Day)’이다. 유엔총회는 2017년 5월 24일 9월 30일을 세계 번역의 날로 공식 지정했다. 유엔은 전문 번역이 국가 간 대화와 이해, 협력을 돕고 평화와 발전에 기여한다고 그 의미를 설명한다.

올해는 번역의 역할을 더욱 넓게 바라본다. 국제번역가연맹(FIT)이 정한 2026년 주제는 ‘언어 다양성과 언어권(Linguistic Diversity and Language Rights)’이며 ‘이해받는 것의 힘(The power of being understood)’을 부제로 삼았다. UNESCO와 Translation Commons 역시 이날 같은 주제로 행사를 열고 언어 다양성, 원주민 언어, 번역 기술과 데이터 거버넌스 문제를 논의한다.

AI가 순식간에 여러 언어를 바꿔주는 시대다. 그럼에도 문학에서는 오래된 질문 하나가 오히려 더 선명해진다. 번역은 원문의 뜻을 정확히 옮기는 작업일까, 아니면 다른 언어에서 작품을 다시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작업일까.

작가는 한 명인데 문장은 왜 달라질까

같은 원작이라도 번역가가 선택하는 단어와 문장 구조, 번역 경로에 따라 독자가 만나는 문장은 달라질 수 있다. (이미지=AI로 생성)

외국어 문장의 모든 단어에 정확히 하나씩 대응하는 한국어가 있다면 번역은 비교적 간단할지 모른다. 현실의 언어는 그렇지 않다. 같은 표현도 시대와 계층, 화자의 감정과 두 사람의 관계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영어의 ‘you’만 해도 한국어에서는 ‘너’, ‘당신’, 이름이나 직함으로 옮길 수 있고 때로는 주어 자체를 생략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농담이나 속담, 방언은 더 어렵다. 원문에 충실하려고 직역하면 독자가 의미를 이해하기 어렵고, 한국 독자에게 익숙한 표현으로 바꾸면 원래 문화의 질감이 사라질 수 있다.

번역가는 그래서 단어만 바꾸지 않는다. 어떤 문장을 길게 남길지, 어디서 끊을지, 등장인물이 얼마나 공손하게 말할지, 원문에 없는 설명을 어느 정도 허용할지 끊임없이 판단한다.

국내에서 오랫동안 읽혀 온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는 ‘어떤 언어를 거쳐 번역했는가’가 독서 경험을 바꿀 수 있다는 사례다. 문학과지성사가 2018년 내놓은 유재원 번역 ‘그리스인 조르바’는 그리스어 원전을 한국어로 직접 옮긴 번역본이다. 출판사는 이를 국내 최초의 그리스어 원전 번역이라고 설명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전 번역이 맞고 틀렸다는 문제가 아니다.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를 거쳐 다시 한국어로 도착하는 ‘중역’과 원전에서 직접 옮기는 번역은 서로 다른 경로를 밟는다. 그 과정에서 방언이나 어감, 문장 구조에 대한 번역가의 판단도 달라질 수 있다.

번역은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이루어지기도 한다. 민음사는 지난 3월 밀란 쿤데라 전집을 리뉴얼하면서 8명의 번역가가 기존 번역을 다시 검토해 개정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역시 이재룡의 기존 번역을 다시 다듬어 개정판으로 선보였다. 이 전집은 쿤데라가 정본으로 인정한 프랑스 갈리마르 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다.

원작은 바뀌지 않아도 독자가 사용하는 언어는 변한다. 오래전에는 자연스러웠던 표현이 낯설어질 수 있고 새로운 연구와 자료가 등장하기도 한다. 같은 고전에 여러 번역본이 존재하는 이유다. 독자는 어느 순간 작가 한 사람의 문학뿐 아니라 그 작품을 자기 언어로 다시 세운 번역가의 선택까지 함께 읽게 된다.

번역을 생각하며 다시 읽는 세계문학

이번 ‘지금, 다시 읽는 책’에는 작품의 명성이나 줄거리만이 아니라 ‘이 문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은 어떤 작업이었을까’를 생각하며 읽어볼 만한 세계문학 다섯 권을 골랐다. 모두 국내에서 현재 종이책을 구할 수 있는 작품들이다.

언어를 옮기는 일이 곧 식민지의 권력을 읽는 일이 될 때

-1938 타이완 여행기 (양솽쯔 지음, 김이삭 옮김, 마티스블루, 2025)

1938년 일제 식민지 타이완을 찾은 일본인 소설가 아오야마 치즈코와 그의 통역을 맡은 타이완 여성 왕첸허가 함께 섬을 여행한다. 음식과 풍경을 찾아가는 여행기처럼 시작하지만 두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와 서로를 이해하는 방식 뒤에는 당시 일본과 타이완 사이의 식민지 권력 관계가 자리한다.

소설 속에서 통역자는 단순히 말을 바꾸어 전달하는 사람이 아니다. 누가 말할 수 있고, 누구의 말이 기록되며, 제국의 언어로 쓰인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까지 작품의 핵심으로 들어온다.

한국어판은 김이삭이 옮겼다. 2026년 인터내셔널 부커상은 이 작품의 작가 양솽쯔와 영어판 번역가 린 킹(Lin King)이 공동 수상했다. 이번 수상은 중국어 계열 언어에서 번역된 작품으로는 처음이었다.

100여 개 이야기의 목소리를 하나의 한국어로 엮다

-방랑자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99, 2022)

공항과 호텔, 지도와 박물관, 해부학과 인간의 육체, 여행자와 이주민의 이야기가 100편이 넘는 길고 짧은 글 속에서 이어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사건을 따라가는 전통적인 장편소설과는 거리가 멀다. 짧게는 몇 문장에서 끝나는 단상부터 중편에 가까운 이야기까지 서로 다른 형식과 목소리가 모여 ‘움직이는 인간’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만든다.

이 책을 번역의 관점에서 읽으면 독특한 구조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기록과 에세이, 여행기와 소설의 경계를 오가면서 문장의 길이와 리듬, 화자의 목소리도 계속 달라진다. 한국어판을 옮긴 최성은은 폴란드 문학을 전공하고 토카르추크의 여러 작품을 번역해온 번역가다.

‘방랑자들’은 2018년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받았다. 당시 상은 작가 토카르추크와 영어 번역가 제니퍼 크로프트(Jennifer Croft)가 공동 수상했다. 같은 작품이라도 영어 독자가 만난 ‘Flights’와 최성은 번역으로 한국 독자가 만나는 ‘방랑자들’은 각각 다른 언어에서 새롭게 구성된 작품이다.

낯선 도시를 이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만큼이나 하나의 작품이 폴란드어에서 영어와 한국어를 비롯한 수많은 언어로 이동하는 과정을 생각하며 읽어볼 만하다.

말하지 않는 감정까지 번역할 수 있을까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송은경 옮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8, 2021)

영국 귀족 저택에서 평생 집사로 일한 스티븐스가 자동차 여행에 나선다. 여행은 곧 자신의 직업과 선택, 주인에게 바친 충성, 그리고 놓쳐버린 사랑을 되돌아보는 시간이 된다. 이 작품으로 가즈오 이시구로는 1989년 부커상을 받았다.

‘남아 있는 나날’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 무엇을 말하느냐 못지않게 무엇을 말하지 않느냐다. 스티븐스는 감정을 직접 드러내기보다 품위와 의무, 직업적 태도 뒤에 숨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설명하면서도 독자는 그의 말과 실제 감정 사이의 틈을 읽어야 한다.

이 때문에 번역에서는 단순히 영어 문장의 의미만 옮겨서는 작품 특유의 절제가 살아나기 어렵다. 지나치게 감정을 보충하면 스티븐스라는 인물 자체가 달라질 수 있고, 반대로 영어식 완곡어법을 기계적으로 옮기면 한국어에서는 부자연스러워질 수 있다.

송은경 번역의 현재 세계문학전집판은 2021년 출간됐다. 한 사람이 평생 애써 감춰온 후회를 아주 낮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소설. 번역가가 ‘말하지 않은 것’까지 어떻게 한국어 안에 남길 수 있는지를 생각하며 다시 펼쳐볼 작품이다.

쉼표와 긴 문장까지 작가의 문체라면

-눈먼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해냄, 2022 개정판)

자동차를 몰던 한 남자가 갑자기 눈앞이 하얗게 변하면서 시력을 잃는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백색 실명’은 도시 전체로 번지고, 감염자들은 격리된다. 사회의 규칙이 무너지자 인간의 이기심과 폭력이 드러나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돌보고 함께 살아남으려는 연대도 모습을 드러낸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대표작이다. 사라마구의 문체는 번역가에게 특히 까다롭다. 그는 대화를 일반적인 따옴표로 분리하지 않고 서술 속에 섞어 넣으며, 쉼표로 이어지는 긴 문장을 즐겨 사용했다. 노벨재단 역시 그의 특징으로 서술과 대화의 결합, 적은 문장부호와 길게 이어지는 문장을 꼽는다.

한국어판을 옮긴 정영목 역시 문장을 이해하기 쉽게 잘게 나누기보다 특유의 흐름을 상당 부분 유지한다. 2022년에는 사라마구 탄생 100주년을 맞아 개정판이 출간됐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다시 읽는다면 줄거리만 따라가기보다 어디에서 문장이 숨을 쉬고, 어디에서 대화와 서술의 경계가 무너지는지 살펴봐도 좋다. 문장부호 하나까지 문체라면 번역은 결국 ‘뜻’ 이상을 옮겨야 한다.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주인공의 생을 옮기는 법

-살 (데이비드 솔로이 지음, 송예슬 옮김, 서해문집, 2026)

헝가리에서 어머니와 살아가는 열다섯 살 이슈트반은 이웃의 중년 여성과 관계를 맺은 뒤 예상하지 못한 사건에 휩쓸린다. 이후 소년원과 군 복무, 이라크 파병을 거쳐 런던으로 흘러가고 부유층의 세계에 들어선다. 돈과 계급, 욕망을 따라 그의 위치는 극적으로 바뀌지만 정작 이슈트반 자신은 삶을 길게 설명하지 않는다.

데이비드 솔로이의 ‘살(Flesh)은 2025년 부커상 수상작이다. 한국어판은 송예슬이 옮겨 지난 6월 출간됐다. 이 작품에서 번역의 어려움은 화려한 수사를 옮기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짧은 대사와 현재 시제, 설명하지 않는 공백을 번역자가 친절하게 채워 넣지 않아야 원작의 건조함이 살아난다.

AI는 문학 번역가가 될 수 있을까

짧은 외국어 문장을 입력하면 생성형 AI는 몇 초 안에 자연스러운 한국어 문장을 내놓는다. 긴 문서도 빠르게 처리하고 같은 단어를 문서 전체에서 일관되게 번역하는 데도 유용하다. 몇 년 전의 기계번역과 비교하면 결과물도 크게 자연스러워졌다.

그렇다면 소설 역시 AI에 맡기면 될까. 최근 연구는 아직 단순한 ‘그렇다’ 또는 ‘아니다’로 답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2025년 북미전산언어학학회(NAACL)에 발표된 문학번역 평가 연구는 인간이 출간한 전문 번역과 대규모언어모델(LLM)의 번역을 비교했다. 연구진은 적절한 인간 평가 방식을 사용했을 때 출간된 인간 번역이 LLM 번역보다 일관되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밝혔다. LLM은 인간 번역보다 원문에 더 문자적으로 붙고 표현의 다양성이 떨어지는 경향도 보였다.

반대 방향의 가능성도 있다. 같은 해 Machine Translation Summit에 발표된 연구에서는 전문 문학 번역가들이 LLM이 만든 초벌 번역을 후편집하도록 했다. 그 결과 처음부터 사람이 번역하는 방식보다 작업 시간을 줄이면서도 비슷한 수준의 창의성을 유지할 가능성이 나타났다. 연구진은 LLM이 문학 번역가를 대체하기보다 작업을 지원하는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결국 현재의 질문은 ‘AI냐 인간이냐’라는 양자택일보다 어떤 일을 AI에게 맡기고 어떤 판단을 인간 번역가가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다. AI는 초벌 번역과 용어 정리, 여러 표현의 후보 제시에는 강하다. 반면 소설 전체에 걸친 화자의 목소리, 일부러 남겨둔 모호함, 언어유희와 방언, 역사적·문화적 맥락까지 일관되게 판단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남아 있는 나날’에서 스티븐스가 감정을 감추는 방식이나 ‘살’에서 이슈트반이 좀처럼 말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문장 하나만 들여다봐서는 충분히 파악하기 어렵다.

올해 세계 번역의 날 주제는 이런 문제를 개인의 독서 경험에서 한 걸음 더 넓힌다. 유네스코(UNESCO)와 ‘Translation Commons’는 2026년 행사에서 번역 기술이 언어 다양성을 존중하도록 설계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AI 시대에는 데이터가 풍부한 언어가 기술의 혜택을 먼저 누리고, 자료가 부족한 소수 언어가 다시 소외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번역 기술이 좋아질수록 번역가가 사라진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오히려 기계가 ‘뜻’을 빠르게 바꿀 수 있게 되면서 인간 번역가가 담당해온 다른 영역이 더 또렷하게 드러난다. 인물이 어떤 목소리로 말해야 하는지, 낯선 문화를 어디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모호함을 그대로 남길 것인지, 한국어에서 어떤 리듬을 선택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다.

우리가 세계문학에서 기억하는 문장은 한 사람만의 손을 거쳐 온 것이 아니다. 작가가 만든 세계가 번역가의 해석을 지나 또 다른 언어에서 독자에게 도착한다. AI 시대의 세계 번역의 날에 오래된 번역문학을 다시 펼쳐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주의 신간

글쓰기를 금지한 세계에서 ‘시’가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된다: ‘시인 황후’

(션 타오 지음, 김원희 옮김, 북스피어, 2026)

세계 번역의 날인 오늘 국내 출간되는 ‘시인 황후(The Poet Empress)’는 중국계 캐나다 작가 션 타오의 판타지 소설이다. 한국어판은 김원희가 옮겼다. 배경은 여성에게 읽고 쓰는 일이 금지된 가상의 제국이다. 기근 속에서 가족을 살리기 위해 황자 테렌의 후궁이 된 웨이는 그가 황제가 되면 더 큰 파멸이 닥칠 것이라고 판단한다. 이 세계에서 특별한 힘을 지닌 것은 칼이나 군대가 아니다. 현실을 변화시키는 힘을 가진 ‘시’다.

문자를 배우고 글을 쓰는 행위 자체가 권력이 되는 설정은 세계 번역의 날의 문제의식과도 묘하게 맞닿는다. 어떤 언어로 말할 수 있는지, 자신의 말을 기록할 수 있는지, 다른 사람이 그 말을 이해할 수 있는지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문제가 아니라 권리와 힘의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황주영 기자
라이프2026-08-06
[지금, 다시 읽는 책] 가을은 달력에서 먼저 온다…입추에 다시 읽는 계절의 책들
  • 폭염은 여전해도 절기는 이미 가을의 문턱
  • 늦여름의 빛부터 인생의 황혼까지 이어지는 여섯 권
  • 지나가는 계절을 붙잡고 다가올 시간을 준비하는 독서
달력에는 어느새 ‘입추’라는 두 글자가 놓였다. 실제 날씨보다 달력이 먼저 가을을 데려온 셈이다. (이미지=AI로 생성)

햇볕은 여전히 뜨겁고 밤에는 에어컨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 거리의 옷차림도, 휴가지의 풍경도 아직 한여름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달력에는 어느새 ‘입추’라는 두 글자가 놓였다. 실제 날씨보다 달력이 먼저 가을을 데려온 셈이다.

올해 입추는 8월 7일이다. 입추는 대서와 처서 사이에 드는 24절기의 열세 번째 절기로, 태양이 황경 135도에 이르는 때를 가리킨다. 이름에는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이 담겼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도 입추는 완성된 가을을 맞는 날이라기보다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고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생활의 기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입추는 아직 보이지 않는 계절의 변화를 먼저 감지하는 날에 가깝다. 여름의 끝을 기억하는 소설, 자연의 속도로 시간을 읽는 산문,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까지. 가을의 문턱에서 다시 펼쳐볼 여섯 권을 골랐다.

여름이 남아 있는 동안 가을은 시작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비채, 2016)

계절은 달력이 넘어간다고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여름은 한 장소의 빛과 냄새에 남고, 어떤 시간은 그곳을 떠난 사람의 기억 속에서 뒤늦게 완성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이처럼 한 계절이 사람과 공간에 머무는 방식을 섬세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신입 건축가 사카니시는 노건축가 무라이 슌스케가 이끄는 설계사무소에 들어간다. 이들은 여름 동안 산속 별장에 머물며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공모를 준비한다. 사무소를 여는 연필 깎는 소리와 숲 냄새를 머금은 바람, 갓 구운 스콘과 목재의 질감이 이어지는 가운데 건축가들은 건물이 주변 자연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소설은 극적인 사건을 빠르게 밀어붙이기보다 사람이 일하고 배우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천천히 쌓아 올린다. 건축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한 거대한 기념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과 주변 풍경을 위한 그릇이 된다. 젊은 건축가가 스승의 태도를 지켜보며 성장하는 과정 역시 눈에 띄는 변화보다 오랜 관찰과 반복을 통해 이뤄진다.

201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 작품은 2026년 새로운 디자인의 라이트에디션으로 다시 출간됐다. 입추가 여름을 단숨에 밀어내는 날이 아니듯, 이 소설의 여름도 끝났다는 선언 뒤에 오래 남는다. 계절은 지나가지만 그 계절에 배운 삶의 태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우는 작품이다.

-‘늦여름’ 1·2(아달베르트 슈티프터, 문학동네, 2011)

여름이 끝나갈 무렵 잠시 되돌아오는 따뜻한 날들을 ‘늦여름’이라 부른다.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장편소설 ‘늦여름’에서 이 말은 자연의 한때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인생의 경험을 통해 성숙해 가는 시간을 뜻한다.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진 청년 하인리히는 여행을 하던 중 폭풍을 피해 한 저택을 찾는다. 그러나 저택의 주인 리자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의 판단이 자연을 오래 관찰한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인리히는 이후 저택을 거듭 방문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리자흐의 집에서는 정원과 농장, 가구와 그림, 책과 조각이 무질서하게 늘어서지 않는다. 자연과 예술, 노동과 생활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하인리히는 이곳에서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을 오래 바라보는 법과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두 권을 합쳐 900쪽에 가까운 긴 소설이며 전개 역시 느리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림이 작품의 중심이다. 사람의 성장도 계절의 변화처럼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정밀한 자연 묘사와 인간 내면의 발전을 함께 그린 ‘늦여름’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더불어 19세기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성장소설로 평가받는다. 폭염 속에서 이미 다음 계절을 알리는 입추처럼, 성숙의 조짐은 삶이 크게 달라지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달력 대신 풍경으로 계절을 읽는 사람들

-‘자전거여행’ 1·2(김훈, 문학동네, 2014)

계절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은 달력보다 몸일지 모른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오르다 보면 맞바람의 온도가 달라지고, 강가의 풀빛과 논의 냄새가 변한다. 자동차 안에서는 순식간에 지나갔을 풍경도 페달을 밟는 사람 앞에서는 속도를 늦추며 모습을 드러낸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저자가 전국의 산과 강, 갯벌과 포구를 자전거로 지나며 쓴 기행산문이다. 김포평야와 남양만, 섬진강과 소백산맥을 통과하는 길 위에서 자연의 생태와 지역의 역사,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노동이 한 문장 안에서 만난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한 풍경이 만들어지기까지 쌓인 지리적 시간과 사람의 삶을 함께 들여다본다.

자전거는 여행자를 자연의 바깥에 세워두지 않는다. 오르막의 경사와 바람의 저항, 땀과 갈증을 온몸으로 통과하게 한다. 그렇게 몸이 풍경에 개입하는 순간 계절은 배경이 아니라 직접 겪는 현실이 된다. 꽃이 피고 지는 속도, 강물이 흐르는 방향과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각 지역 사람들의 생업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드러난다.

입추에 이 책을 다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절의 변화는 기온계에 표시되는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해가 지는 시간이 조금 빨라지고, 저녁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길가 식물의 색이 미세하게 바뀌는 순간을 몸으로 알아차릴 때 비로소 가을은 시작된다.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은행나무, 2021)

1845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약 2년 2개월 동안 자연의 사계절을 통과하며 자신이 먹고 자고 일하는 데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관찰했다. ‘월든’은 그 생활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와 노동, 자연과 문명에 관해 쓴 기록이다.

소로의 실험은 세상을 등지고 혼자 살아남으려는 도피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가 당연하다고 요구하는 소비와 노동의 방식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검토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작은 집을 짓는 비용부터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과정까지 기록하며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에 내주는 삶이 정말 풍요로운지 묻는다.

월든 호수의 얼음이 녹고 숲의 색이 바뀌는 과정은 인간이 정한 일정과 무관하게 움직인다. 자연의 시간 앞에서 인간의 조급함은 작아진다. 가을은 여름을 실패하게 만드는 계절이 아니며, 겨울 역시 생명의 끝이 아니다.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이 다르고, 멈춰 있는 듯한 시간에도 다음 변화가 준비된다.

입추는 새로운 계절용 물건을 장만하기 전에 하반기의 삶에서 무엇을 덜어낼지 생각해 볼 기회이기도 하다. 소로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계절을 맞는다는 것은 옷장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가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를 다시 살피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가을은 끝이 아니라 돌아볼 시간이 시작됐다는 뜻

-‘가을’(앨리 스미스, 민음사, 2019)

앨리 스미스의 ‘가을’은 단풍과 낙엽을 아름답게 그려낸 전통적인 계절소설과 거리가 있다. 작품이 바라보는 가을은 익숙했던 질서가 흔들리고 사회의 균열이 드러나는 시기다. 자연의 계절은 순환하지만 인간 사회는 이전과 같은 자리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소설의 중심에는 서른두 살의 엘리자베스와 101세 노인 대니얼이 있다. 두 사람은 어린아이와 노인으로 처음 만나 세대와 나이의 차이를 넘어선 우정을 이어온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대니얼 곁에서 엘리자베스는 그와 나눴던 대화와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린다. 이들의 기억 사이에는 예술과 사랑, 노화와 죽음, 영국 사회의 변화가 겹쳐진다.

‘가을’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 이후의 사회를 빠르게 소설에 담아낸 작품이다. 국경과 정체성, 외국인 혐오와 정치적 분열을 다루면서도 작품은 냉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세대의 두 사람이 오랫동안 쌓아 온 관계와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 첫 권으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인 동시에 잎을 내려놓는 계절이다. ‘가을’은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분열의 시기에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관계와 태도가 무엇인지 묻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회 역시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대의 계절소설이다.

-‘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21)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인생의 가을에 도착한 한 남자가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소설이다. 영국 귀족 저택 달링턴 홀에서 평생 집사로 살아온 스티븐스는 새 주인의 권유로 며칠간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목적지는 과거 함께 일했던 켄턴 양이 사는 곳이다.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개인의 감정과 판단을 억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버지가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맡은 업무를 계속했고, 켄턴 양에게 품었던 감정도 직업적 품위라는 이름 아래 외면했다. 자신이 섬긴 달링턴 경의 정치적 판단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조차 충성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여겼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기억을 하나씩 꺼내 놓을수록 그가 지켜왔다고 믿은 품위의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충성은 때로 책임을 회피하는 명분이 됐고, 절제는 사랑을 잃게 만든 침묵이 됐다. 스티븐스는 너무 늦은 시점에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깨닫는다.

1989년 부커상을 받은 이 작품이 허무와 후회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나간 낮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저녁이다. 계절로 치면 스티븐스의 삶은 분명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그에게도 다른 사람과 농담을 나누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볼 시간은 남아 있다. 가을을 쇠락이 아니라 지난 선택을 돌아보고 남은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는 계절로 읽게 하는 작품이다.

입추의 ‘입’은 가을이 완성됐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그 문턱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한낮의 열기는 그대로지만 해는 조금씩 짧아지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는 식물과 바람이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책을 읽는 일도 이와 닮았다. 아직 닥치지 않은 시간을 미리 살아보고, 지나간 계절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의미를 뒤늦게 발견하게 한다. 가을은 선선한 바람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지 않는다. 달력이 먼저 데려온 계절의 문턱에서 책을 펼치는 순간, 보이지 않던 변화는 비로소 문장이 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이주의 신간*

성공 신화의 잿더미에서 되살아난 여자들의 이야기 :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박상영, 래빗홀, 2026)

‘대도시의 사랑법’과 ‘1차원이 되고 싶어’ 등을 통해 동시대의 사랑과 관계를 그려온 박상영이 5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2026년 7월 출간된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는 작가가 처음 본격적으로 도전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평범한 회사원인 재일 한국인 여성 마츠노 하나는 요코하마에서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를 화재로 잃는다. 어머니가 임종 직전 남긴 말은 한국 대기업 총수 윤동주 회장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하나는 기자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건너오고, 어머니와 윤동주 회장, 재벌가를 둘러싼 오랜 비밀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방화 사건의 진실을 좇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면서 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한국 경제사의 변화를 함께 통과한다. 기업의 성장과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욕망, 그 과정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삶, 성공 신화 이면의 담합과 부패가 여러 인물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드러난다.

박상영은 사랑을 낭만적인 구원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구원이었던 관계가 다른 사람에게는 오래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모순을 파고든다. 기존 작품의 날카로운 관계 묘사를 유지하면서도 역사와 재벌 서사, 방화 사건과 복수극을 결합해 작가의 새로운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신작이다.

황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