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 열풍으로 전력 수요 폭증세…인허가 규제에 묶인 92GW 청정에너지
- 심사 문턱 높아지자 전력난 심화…테크 기업들 자체 발전소 건설 나서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의 급격한 확산으로 미국 전역에서 전력 부족 경고음이 울리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까다로운 인허가 규제가 청정에너지 공급망을 전면 마비시킬 수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글로벌 에너지 컨설팅 기업 우드맥켄지(Wood Mackenzie)의 최신 보고서에 따르면, 현 행정부의 규제 강화 조치로 인해 무려 92기가와트(GW)에 달하는 신규 청정 전력 공급 계획이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 이는 급증하는 인공지능 생태계의 전력 수요를 뒷받침하려던 고성장 에너지 산업 전반에 막대한 차질을 예방하는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다.
실제로 행정부의 규제 중심 기조와 연방 기금 회수 조치 등은 이미 시장에 즉각적인 타격을 입히고 있다. 지난해인 2025년 한 해에만 연방 토지 내에서 추진되던 7GW 규모의 발전 설비 계획이 전격 취소되었으며, 앞으로 심사 절차가 더욱 까다로워짐에 따라 공공 부지에서 12GW, 민간 부지에서 80GW의 추가 프로젝트가 줄줄이 무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규제 지연 사태가 자본 시장에 미치는 파장도 심각하여, 에너지 산업 분야에서만 무려 1,210억 달러(약 160조 원) 규모의 대규모 청정 인프라 투자가 증발할 위기에 직면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와 같은 공급 정체 현상은 지난 20년간 제로 성장에 머물던 미국의 전력 수요가 최근 급격한 상승 곡선으로 돌아선 시점과 맞물려 더 큰 경제적 부작용을 낳고 있다. 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 연산 처리를 위해 데이터센터의 수와 규모를 전례 없는 속도로 확장하면서 전력 소비량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시장조사기관 블룸버그NEF(BNEF)는 데이터센터의 가동 확대로 인해 오는 2035년까지 이들의 전력 사용량이 현재보다 거의 3배 가까이 폭증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가 전력망 운영사들을 대상으로 신규 전력망 연결을 빠르게 처리할 수 있는 이른바 ‘패스트트랙’ 제도를 도입하도록 강제하고 나섰으나, 실제 발전 용량 자체의 절대적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미국 내에서 데이터센터가 가장 밀집해 있고 규모가 큰 주요 전력망 지역의 경우, 운영사들이 지난 4년간 신규 발전원의 진입을 사실상 차단하면서 수요가 치솟는 시기에 전력 공급이 완전히 동결되는 최악의 병목 현상을 겪고 있다. 전력 수급 불안정이 심화되자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 대형 테크 기업들은 중앙 전력망에 의존하는 대신 데이터센터 부지 내에 자체 발전소를 직접 건설하는 등 각자도생의 길을 모색하는 실정이다.
미국이 전력난 돌파구로 삼았던 신규 발전원 중 절대다수가 친환경 재생에너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규제의 타격은 더욱 뼈아프다. 지난 2025년 미국 전역에 신규 도입된 발전 설비는 역대 최대치인 53GW를 기록했는데, 이 중 태양광과 풍력, 그리고 에너지 저장장치(ESS)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90%에 육박했을 만큼 청정에너지는 전력 공급의 핵심 축 역할을 담당해 왔다.
이처럼 청정에너지 시장의 발목을 잡은 직접적인 원인은 지난해 8월 더그 버검(Doug Burgum) 미국 내무부 장관이 내린 행정 명령이다. 당시 버검 장관은 환경에 유해한 풍력 및 태양광 프로젝트를 전면 통제하겠다는 명분을 내세워 인허가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 이 조치로 인해 주 타깃이 된 태양광과 풍력 발전은 물론, 전력망 안정화의 핵심인 배터리 에너지 저장 프로젝트까지 대거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러한 인허가 분쟁과 지연 피해는 주로 오레곤, 앨라배마, 메인, 미네소타, 몬태나 주 등에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민간 습지 인근에 위치한 태양광 프로젝트들이 가장 큰 허가 취소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풍력 발전소의 경우 고공 비행 구역 및 영공 규제라는 복잡한 법적 잣대에 가로막혀 조사가 진행 중이다. 더욱이 최근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전체 습지의 80%에 달하는 지역에 대한 환경 보호 조치를 공식 해제하기로 결정하면서, 민간 부지 내 태양광 프로젝트들이 향후 규제 지형 변화에 따라 얼마나 더 큰 유동성 위기를 겪게 될지 불확실성이 극대화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번 규제를 주도한 더그 버검 장관은 과거 노스다코타 주지사 시절 주 내의 풍력 발전을 전폭적으로 확장하고 오는 2030년까지 탄소 배출 제로(Net Zero)를 달성하겠다는 초당적 목표를 세웠던 인물이다. 불과 2024년까지만 해도 그는 노스다코타의 풍부한 풍력 자원이 주 전체 전력의 3분의 1을 생산하고 있다며 대대적으로 홍보해 왔으나, 연방 정부의 장관직에 오른 이후 재생에너지 산업의 확장을 정면으로 가로막는 규제 중심의 정반대 행보를 보이고 있어 업계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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