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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2026-09-08
[지금, 다시 읽는 책] AI가 대신 읽고 쓰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나…‘국제 문해의 날’ 다시 읽는 책들
  • 국제 문해의 날 60주년… 청년·성인 최소 7억3900만명 기본 문해 역량 부족
  • ‘문맹’부터 ‘나는 말랄라’까지…언어와 교육, 읽고 배울 권리를 다시 묻다
  • AI가 글을 읽고 요약하는 시대…직접 읽고 맥락을 판단하는 능력의 가치
책을 읽고 쓰는 전통적 문해력에 AI가 만든 정보 환경이 더해지면서, 오늘날의 문해력은 정보를 이해하는 데서 나아가 출처를 확인하고 사실 여부를 판단하는 능력까지 요구하고 있다. (이미지=AI로 생성)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오랫동안 배움의 출발점이었다. 책과 신문을 읽고 자신의 생각을 글로 남기며, 필요한 정보를 찾아 생활하는 힘도 여기서 시작됐다. 그러나 인공지능(AI)이 검색 결과를 정리하고 긴 문서를 요약하며 글까지 대신 써주는 시대가 되면서 ‘읽고 쓸 줄 안다’는 말의 의미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눈앞에 놓인 문장을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 정보가 어디에서 왔는지, 사실인지, 어떤 맥락이 빠져 있는지를 판단하는 능력까지 요구된다.

9월 8일은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국제 문해의 날(International Literacy Day)’이다. 1966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선포돼 1967년부터 매년 기념해 왔으며 올해로 60주년을 맞았다. 2026년 주제는 ‘사람, 지구 그리고 번영을 위한 문해(Literacy for people, the planet and prosperity)’다. 지난 60년 동안 세계 문해 환경은 크게 개선됐지만, 유네스코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청년과 성인 가운데 최소 7억3900만명이 기본적인 문해 역량을 갖추지 못했다.

60년 전 문해의 출발점이 누구나 글자를 읽고 쓸 수 있도록 하는 일이었다면 이제 그 질문은 한 단계 넓어지고 있다. AI가 사람 대신 읽고 쓰는 일까지 맡기 시작한 시대, 인간에게 필요한 ‘읽기’란 무엇일까. 국제 문해의 날을 맞아 언어와 교육, 책과 지식을 둘러싼 여섯 권의 책을 다시 펼쳐본다.

읽고 배울 기회를 빼앗긴 사람들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한겨레출판, 2018)

헝가리 출신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전적 이야기다. 어려서부터 책을 읽고 글을 쓰던 그는 1956년 헝가리를 떠나 스위스로 망명하면서 낯선 프랑스어 앞에서 다시 ‘읽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크리스토프는 모국어인 헝가리어가 아닌 언어로 생활해야 했다. 이미 읽고 쓸 줄 알았던 사람이지만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자 다시 처음부터 읽기와 쓰기를 익혀야 했다. 그는 프랑스어를 자신에게 낯선 ‘적어(敵語)’라고 부르면서도 결국 이 언어로 소설을 쓰는 작가가 된다.

‘문맹’이 보여주는 문해는 문자 해독 능력보다 넓다. 익숙한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자신을 표현하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수단을 잃는 경험이기도 하다. 반대로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낯선 사회와 다시 연결되는 과정이다.

-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열린책들, 2020)

타라 웨스트오버는 미국 아이다호 산골에서 정규 학교 교육과 거의 단절된 환경에서 성장했다. 16세까지 학교에 다니지 않았던 그는 독학으로 대학 진학을 준비했고 이후 브리검영대학교를 거쳐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러나 ‘배움의 발견’을 단순한 학업 성공담으로만 읽기는 어렵다. 웨스트오버가 교육을 통해 얻은 것은 더 많은 지식만이 아니었다. 가족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에서 당연하다고 받아들였던 일들을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고,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배움은 이미 알고 있는 세계에 정보를 더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를 다시 살펴보는 계기가 된다. 정보의 양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AI 시대에도 지식을 얻는 일과 그것을 자기 판단으로 만드는 일이 같지 않은 이유다.

-나는 말랄라 (말랄라 유사프자이·크리스티나 램, 문학동네, 2014)

‘나는 말랄라’는 질문을 ‘어떻게 배울 것인가’에서 ‘누가 배울 수 있는가’로 넓힌다. 파키스탄 스와트 지역에서 성장한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탈레반이 여학생들의 교육을 제한하던 시기 교육받을 권리를 공개적으로 주장했다.

그는 어린 시절 BBC 우르두어 블로그를 통해 탈레반 통치 아래에서 살아가는 경험을 알렸고 여성 교육을 위한 활동을 이어갔다. 2012년 하굣길 스쿨버스에서 탈레반 무장대원의 총격을 받았지만 생존했으며, 이후에도 교육권 운동을 계속했다. 2014년에는 인도의 아동권리 운동가 카일라시 사티아르티와 함께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문맹’이 자신의 언어로 세상과 연결되는 문제를 보여주고 ‘배움의 발견’이 교육을 통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과정을 보여준다면 ‘나는 말랄라’는 그보다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애초에 읽고 배울 기회가 누구에게나 허락돼 있는가.

누가 말과 지식을 통제하는가

-책도둑 (마커스 주삭, 문학동네, 2021 합본 특별판)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리젤 메밍거는 양아버지 한스에게 글을 배우면서 책의 세계로 들어간다. 책을 불태우고 특정한 생각과 표현을 억압하던 시대에 리젤에게 책과 단어는 자신을 지탱하고 다른 사람과 연결하는 수단이 된다.

이 작품에서 단어는 한쪽 방향으로만 작용하지 않는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사람을 이어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선전과 증오를 확산시키는 말도 있다. 누가 어떤 단어를 반복하고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지는 사람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준다.

글자를 읽을 줄 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이유다. 누가 무슨 목적으로 그 말을 사용하는지까지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핍 윌리엄스, 엘리, 2021)

실제 ‘옥스퍼드 영어 사전(Oxford English Dictionary)’ 편찬 역사를 바탕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에즈미는 사전 편찬 작업이 진행되는 공간에서 자라며 어떤 말은 사전에 기록되고 어떤 말은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모습을 지켜본다. 그러면서 여성들의 일상에서 사용되지만 공식적인 기록에서는 소외된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된다.

사전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단어를 모아놓은 책처럼 보인다. 하지만 어떤 단어를 넣고 빼는지, 여러 의미 가운데 무엇을 대표적인 정의로 삼을지는 결국 사람이 결정한다.

그래서 이 책의 질문은 AI 시대에도 이어진다. 생성형 AI 역시 세상의 모든 지식을 있는 그대로 비추는 거울은 아니다. 어떤 데이터와 설계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는지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다. AI가 보여주는 것만큼 보여주지 않는 정보와 빠진 관점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AI가 대신 읽는 시대, 인간은 무엇을 잃는가

-읽지 않는 사람들 (나오미 배런, 웅진지식하우스, 2026)

언어와 기술, 읽기의 관계를 연구해 온 나오미 배런은 이 책에서 AI가 인간의 읽기를 대신하기 시작한 상황을 들여다본다. 지난 6월 국내에 출간된 책의 원제는 ‘Reader Bot: What Happens When AI Reads and Why It Matters’다.

긴 기사나 보고서, 논문을 AI에 넣으면 몇 초 만에 요약을 얻을 수 있다. 이용자는 전체 글을 읽지 않고도 핵심 내용을 파악할 수 있고, 모르는 내용을 다시 설명해달라고 요청할 수도 있다. 읽기에 필요한 시간과 수고를 크게 줄여주는 기술이다.

그러나 배런이 주목하는 것은 읽기의 효율만이 아니다. 인간에게 읽기는 문장에서 정보를 꺼내는 과정에 그치지 않는다. 글의 흐름을 따라가며 의미를 만들고, 다른 사람의 시각을 접하고, 스스로 생각하는 과정이 함께 일어난다. AI가 읽기를 대신할수록 사람이 이 과정을 직접 경험할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문제를 제기한다.

이 책은 국제 문해의 날이 던져온 질문을 현재로 가져온다. 과거에는 ‘누구나 읽을 수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였다. AI 시대에는 여기에 또 하나의 질문이 생겼다. 읽을 수 있는데도 스스로 읽지 않는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AI가 요약해준 글을 보는 것과 원문을 직접 읽으며 무엇이 중요한지 판단하는 것은 같은 경험이 아니다. AI가 더 많은 글을 대신 읽어줄수록 어디까지 AI에 맡기고 무엇을 직접 읽을 것인지 결정하는 능력도 새로운 문해의 일부가 되고 있다.

이주의 신간

독서모임을 오래 한 사람에게 생기는 일 (김이경, 유유, 2026)

지난 4일 출간된 김이경의 ‘독서모임을 오래 한 사람에게 생기는 일’은 30년 넘게 독서모임을 이끌어온 저자가 책을 함께 읽으며 경험한 변화를 기록한 책이다.

같은 책을 읽더라도 사람마다 눈에 들어오는 문장과 받아들이는 의미는 다르다. 혼자라면 지나쳤을 대목을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통해 발견하기도 하고, 자신이 확신했던 해석을 다시 생각하기도 한다. 저자는 독서모임을 단순히 책을 읽는 자리가 아니라 책을 매개로 ‘사람을 읽는 자리’로 바라본다.

AI가 글의 핵심을 찾아주고 요약까지 해주는 시대에도 이런 읽기는 쉽게 대체되기 어렵다. 같은 문장을 놓고 다른 사람이 왜 자신과 다르게 생각하는지 듣고, 그 차이를 통해 자신의 시각을 넓혀가는 과정은 정답을 빠르게 찾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배움이기 때문이다.

‘읽지 않는 사람들’이 AI가 대신 읽을 때 인간이 놓칠 수 있는 것을 묻는다면 이 책은 사람이 직접 읽고 다른 사람과 생각을 나눌 때 얻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 문해의 날을 맞아 ‘잘 읽는다’는 것이 단순히 많은 정보를 빠르게 얻는 능력인지, 아니면 한 문장을 오래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해석까지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인지 다시 생각해볼 만한 신간이다.

황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