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 위의 한국사

라이프2026-07-14
[지금, 다시 읽는 책] 복날에 다시 읽는 음식의 책들…보양식보다 오래 남는 식탁의 기억
  • 복죽·천렵·탁족에 담긴 한여름의 쉼과 나눔
  • 삼계탕에서 치킨·간편식까지 달라진 복날 풍경
  • 음식의 역사와 계절, 돌봄과 회복을 읽는 다섯 권
(이미지=AI로 생성)

한 해 중 볕이 가장 사납게 내리쬐는 계절, 삼복이 다시 문턱을 넘어온다. 올해 초복은 15일, 중복은 25일, 말복은 다음달 14일로 예고되어 있다. 흔히 스물네 절기 가운데 하나로 오해받곤 하지만, 복날은 하지를 지나고 입추를 넘긴 뒤의 경일을 헤아려 정해지는, 훨씬 오래된 세시의 풍속이다.

농경의 시간 속에서 복날은 그저 기름진 음식을 먹어치우는 하루가 아니었다. 한여름 농사일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잠시 낫과 호미를 내려놓고 지친 몸을 쉬게 하던 날에 가까웠다. 마을은 머슴과 일꾼들에게 상을 차려 대접했고, 사람들은 냇가로 나가 물고기를 잡아 국을 끓이는 천렵으로 더위를 씻어냈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과, 숲이나 정자나무 그늘 아래 음식을 나누는 복놀이 역시 무더위를 건너는 나름의 방식이었다.

복날의 상 또한 어느 하나로 굳어 있지 않았다. 개장국과 닭백숙은 물론, 붉은 팥이 나쁜 기운과 병을 막아준다는 믿음으로 끓여 먹던 복죽, 민어탕과 육개장, 계곡에서 건진 물고기로 끓인 어죽까지, 지역과 형편에 따라 저마다 다른 그릇이 상 위에 놓였다. 오늘날에는 삼계탕이 복날의 대명사처럼 여겨지지만, 닭에 인삼과 찹쌀을 채워 끓이는 지금의 삼계탕 문화는 근현대의 양계업과 냉장 유통, 외식업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서 비로소 대중의 것이 되었다.

요즘의 복날 풍경은 한결 여러 갈래로 흩어졌다. 가족이나 동료와 삼계탕집을 찾는 걸음은 여전하지만, 젊은 세대는 복날을 하나의 계절 행사처럼 받아들이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지나간다. 평소에는 삼계탕을 즐기지 않던 이들도 복날만큼은 한 번쯤 관련 메뉴를 찾고, 배달 주문에는 삼계탕뿐 아니라 치킨 주문 또한 함께 늘어난다. 편의점 진열대에는 혼자서도 간편히 먹을 수 있는 반계탕과 보양 도시락, 장어·오리 간편식은 물론, 삼계탕을 햄버거나 간식으로 새롭게 풀어낸 상품까지 자리를 넓혀가고 있다.

한 솥의 음식을 마을 사람들이 둘러앉아 나누던 복날은, 이제 자취방에서 간편식을 데우고 친구들과 치킨을 시키며, 제철 과일이나 자신이 좋아하는 한 끼로 여름을 기념하는 날로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 복날의 음식은 시대마다 얼굴을 바꾸어 왔지만, 더위를 함께 건너려는 마음과 누군가를 먹이는 일의 의미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대에 따라 달라져 온 복날의 식탁과, 그럼에도 오래도록 남는 먹는 기억을 다섯 편의 작품 속에서 다시 찾아본다.

삼계탕도 처음부터 복날 음식은 아니었다

-‘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휴머니스트, 2013년)

오래도록 먹어온 음식에는 ‘처음부터 지금과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라는 믿음이 그림자처럼 따라붙는다. 그러나 우리가 전통 음식이라 부르는 메뉴들 역시 특정한 시대의 산업과 유통, 도시의 문화와 소비의 방식을 따라 끊임없이 형태를 바꾸어 왔다.

음식인류학자 주영하의 ‘식탁 위의 한국사’는 지난 백여 년 동안 한국인의 밥상에 오른 음식들을 실마리 삼아 20세기 한국 사회의 변화를 좇는다. 설렁탕과 냉면, 육개장, 잡채, 김밥, 삼계탕과 치킨처럼 익숙한 메뉴들이 언제부터 사람들의 일상에 스며들었으며, 그 시절의 정치·경제·사회적 조건이 음식 위에 어떤 흔적을 남겼는지를 하나하나 들여다본다.

이 책에서 삼계탕은 오래된 조선시대 궁중 음식이라기보다 근대 이후에 빚어진 음식 문화의 한 사례로 다뤄진다. 닭백숙을 먹는 관습 자체는 오래되었으나, 인삼과 찹쌀을 넣은 어린 닭 한 마리를 한 그릇에 담아내는 지금의 방식은 양계 산업과 냉장 유통, 외식업의 성장과 촘촘히 맞물려 있다. 삼계탕이 복날의 상징으로 자리잡기까지, 그 안에는 음식 자체의 내력뿐 아니라 닭고기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팔 수 있게 된 사회의 변화가 함께 스며 있다.

이런 시선으로 보면 요즘 복날에 치킨이나 편의점 간편식을 고르는 풍경도 전통의 단절로만 읽을 수는 없다. 예전 사람들이 저마다의 지역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와 형편에 맞추어 복죽이나 민어탕, 닭백숙을 골랐듯, 오늘의 소비자 역시 비용과 취향, 생활 방식을 저울질하며 자신만의 복달임을 정한다.

음식의 역사는 원형을 고스란히 지켜내는 과정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아가는 방식을 따라 끝없이 변형되어 가는 과정에 가깝다. ‘식탁 위의 한국사’가 건네는 것은 어느 음식이 진짜 전통인가에 대한 정답이 아니라, 한 시대의 식탁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시대의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소비하며 관계를 맺어왔는지가 비쳐 보인다는 사실이다.

몸에 좋은 음식보다 마음이 먼저 기억하는 맛

-‘먹는 기쁨에 대하여’ (한은형, 인플루엔셜, 2026년)

복날이 다가오면 사람들은 으레 몸에 좋은 음식부터 떠올린다. 단백질과 열량은 충분한지, 어떤 약재가 들어갔는지, 지친 기력을 되돌리는 데 도움이 되는지를 따진다. 그러나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 음식이 반드시 가장 값비싸거나 영양가 높은 음식만은 아니다.

소설가 한은형이 2026년에 펴낸 ‘먹는 기쁨에 대하여’는 제철 음식과 소울푸드, 천천히 빚어지는 음식과 그로부터 뻗어나가는 이야기들을 엮은 에세이다. 책은 계절의 음식과 마음속에 오래 남은 맛, 시간과 수고를 들여 완성되는 음식, 그리고 음식에 얽힌 문학과 예술의 이야기를 차례로 따라간다.

제철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단지 그 시기에 영양 성분이 가장 풍부한 재료를 섭취한다는 뜻에 그치지 않는다. 여름날의 콩국수와 풋고추, 장마가 걷힐 무렵의 옥수수, 우물물에 담가 서늘하게 식힌 수박처럼, 음식에는 그것을 먹던 날의 기온과 냄새, 곁에 있던 사람의 모습까지 함께 저장된다.

누군가에게 복날은 삼계탕의 뜨거운 국물로 남아 있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할머니가 마루에 내놓던 수박이나 어머니가 삶아주던 국수, 아버지가 냇가에서 끓이던 어죽으로 남아 있을 수 있다. 음식의 가치는 정해진 조리법 위에서가 아니라 그것을 먹어온 한 사람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먹는 기쁨에 대하여’는 정답처럼 제시되는 보양식에서 한 걸음 물러나 ‘나는 어떤 음식을 먹을 때 기쁜가’를 스스로에게 묻게 한다. 복날이라고 모두가 같은 음식을 먹어야 할 필요는 없다. 자신이 좋아하는 제철의 맛을 천천히 음미하고, 바쁜 하루 속에서도 한 끼를 제대로 챙기는 일 역시 오늘의 복달임이 될 수 있다.

한 숟가락을 기다리는 일이 돌봄이 될 때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강창래, 문학동네, 2018년)

보양식이라는 말에는 흔히 좋은 재료를 아낌없이 넣은 풍성한 한 상이 떠오른다. 그러나 아픈 사람에게 정작 필요한 음식은 재료가 귀하거나 양이 많은 음식이 아닐 때가 많다. 지금 그 사람이 삼킬 수 있고, 먹은 뒤에도 견딜 수 있으며, 다시 한 숟가락을 들게 만드는 음식이어야 한다.

얼마 전 한석규·김서형 배우가 출연한 드라마로도 만들어진 작품, 강창래의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는 암 투병 중인 아내를 위해 요리를 시작한 남편의 부엌 기록이다. 할 줄 아는 요리가 거의 없던 저자는 아내가 삼킬 수 있는 음식을 찾아 헤매며 콩나물국과 볶음밥 같은 일상의 메뉴에서부터 아귀찜과 해삼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음식을 지어낸다. 책의 무게중심은 화려한 조리 기술이 아니라, 아내의 몸 상태를 살피고 다음 한 끼를 준비하는 그 시간에 놓여 있다.

아픈 사람을 위한 밥상 앞에서는 요리하는 이의 만족보다 먹는 이의 상태가 먼저 놓인다. 간을 줄이고 재료를 잘게 다듬으며, 어제는 잘 먹었던 음식도 오늘은 넘기기 어려울 수 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정성을 들였다는 이유만으로 상대에게 더 먹으라 재촉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책에서 요리는 병을 낫게 하는 만능의 치료법으로 그려지지 않는다. 아내의 고통과 다가오는 이별을 막을 수는 없지만, 오늘 먹을 수 있는 음식을 고민하고 한 끼를 차려내는 일은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을 조금 더 또렷하게 만든다.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그 평범한 노동이, 말로는 다 건네지 못한 마음을 대신 전한다.

복날의 본래 풍경에도 이와 닮은 돌봄이 있었다. 한여름 농사일에 지친 이에게 음식을 내고 잠시 쉬게 하는 것이 복달임의 본뜻이었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를 읽고 나면, 보양이란 무엇을 먹이는가보다 누구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음식을 준비하는가에 더 가까운 말처럼 다가온다.

평범한 한 끼가 무너진 일상을 다시 세운다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민음사, 1999년)

누군가를 잃은 뒤에도 식사는 어김없이 돌아온다. 슬픔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도 배는 고프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에도 냉장고 문은 열어야 한다. 살아 있는 사람에게 먹는 일은 피할 수 없는 일상이면서, 동시에 다시 살아가기 위한 가장 작은 첫걸음이기도 하다.

요시모토 바나나의 대표작 ‘키친’은 사랑하는 이의 죽음 뒤에 남겨진 젊은이들이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지며 일상을 되찾아가는 이야기다. 주인공 미카게에게 부엌은 그저 음식을 만드는 자리가 아니다. 냉장고 돌아가는 소리와 조리도구가 놓인 풍경 속에서 잠들 수 있는 곳이며, 삶이 완전히 무너진 순간에도 다시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붙들어주는 공간이다.

작품 속 음식은 결코 거창하지 않다. 함께 장을 보고 소박한 음식을 짓고, 누군가를 위해 따뜻한 한 끼를 들고 먼 길을 찾아가는 순간들이 잔잔히 이어진다. 이 평범한 식사들은 상실을 지워주지는 못하지만, 혼자 남았다고 느끼는 사람을 다시 타인의 곁으로 이끈다.

복날의 오랜 식탁은 공동체가 함께 음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그러나 혼자 사는 사람이 늘고 저마다의 생활 시간이 어긋난 지금, 모든 식사가 넓은 상 위에서 이루어질 수는 없다. ‘키친’은 혼자 먹는 한 끼 또한 소홀히 여겨서는 안 된다고 나지막이 말하는 듯하다. 자신의 몫을 위해 쌀을 씻고 국을 데우는 일도 결국 스스로를 돌보는 방법이기 때문이다.

음식은 사람을 단번에 구원하지 않는다. 다만 오늘의 한 끼를 먹고 내일의 식사를 준비하는 되풀이 속에서, 사람은 조금씩 일상의 리듬을 되찾아간다. 뜨거운 보양식 한 그릇보다 더 오래 몸을 지탱하는 것은, 어쩌면 계속해서 먹고 살아가려는 그 마음일지 모른다.

가족의 전통을 끓이며 자신의 목소리를 찾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라우라 에스키벨, 민음사, 2004년)

전통 음식에는 가족과 공동체의 기억이 배어 있다. 하지만 오래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전통이 따뜻한 것은 아니다. 한 사람에게는 소중한 유산인 관습이 다른 사람에게는 자신의 삶을 선택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굴레가 될 수도 있다.

멕시코 작가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열두 달의 요리법을 따라가며 사랑과 가족, 억압과 해방을 풀어낸 소설이다. 주인공 티타는 집안의 막내딸이 어머니를 돌봐야 한다는 가족의 전통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끝내 결혼하지 못한다. 부엌에서 자라난 티타가 품은 슬픔과 분노, 욕망은 그가 지어낸 음식을 타고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간다.

작품 속 부엌은 서로 다른 두 얼굴을 지닌다. 티타에게 요리는 가족이 물려준 솜씨이자 삶을 짓누르는 의무다. 동시에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다른 사람에게 가닿을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말로는 꺼내지 못한 마음이 음식의 맛과 향, 그것을 먹는 사람들의 반응을 통해 비로소 세상 밖으로 새어 나온다.

복날의 음식 역시 가족과 지역의 관습을 따라 이어져 왔다. 어른이 정해준 음식을 함께 먹고, 같은 날 같은 음식을 지으며 계절이 바뀜을 확인했다. 그러나 전통이 살아남기 위해 모든 사람이 과거와 똑같이 움직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전통이 누구에게 어떤 의미였는지를 헤아리고 지금의 삶과 가치에 맞게 다시 풀어낼 때, 새로운 세대도 그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

삼계탕 대신 치킨을 고르거나, 육류 대신 버섯탕과 콩국수를 택하는 선택, 가족의 식탁 대신 편의점에서 혼자만의 끼니를 사는 풍경도 다르지 않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은 전통을 이어간다는 것이 정해진 규칙에 자신을 끼워 맞추는 일이 아니라, 기억할 것은 남기고 바꿔야 할 것은 다시 써 내려가는 과정일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무엇을 먹었는가보다 누구의 마음이 놓였는가

복날의 음식은 시대를 따라 얼굴을 바꾸어 왔다. 농경사회에서는 농사일에 지친 이들에게 음식을 내고 냇가와 나무 그늘 아래서 잠시 숨을 돌리는 날이었다. 복죽과 개장국, 민어탕과 닭백숙을 지나 삼계탕이 복날의 상징으로 자리잡았고, 이제는 치킨과 간편식, 도시락과 채식 메뉴에 이르기까지 그 폭이 한층 넓어졌다.

다섯 권의 책 역시 저마다 다른 식탁을 비춘다. ‘식탁 위의 한국사’는 전통 음식조차 사회의 변화 속에서 빚어졌음을 짚어주고, ‘먹는 기쁨에 대하여’는 제철의 맛에 쌓인 한 사람의 시간을 돌아보게 한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에서는 음식을 준비하는 일이 돌봄의 언어가 되고, ‘키친’에서는 평범한 한 끼가 상실 이후의 일상을 다시 일으켜 세운다.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의 부엌에서는 가족의 전통을 물려받은 이가 마침내 자신만의 목소리를 찾아간다.

올여름 복날의 식탁에는 삼계탕이 오를 수도, 치킨이나 콩국수, 편의점 도시락 하나가 놓일 수도 있다. 무엇을 먹느냐는 저마다의 형편과 취향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다만 음식의 가격이나 열량보다 오래 남는 것이 있다. 무더운 하루를 함께 견디자며 누군가 건넨 한 그릇, 먹을 사람의 상태를 헤아리며 재료를 다듬던 시간, 혼자서도 끼니를 거르지 않으려 차린 작은 밥상. 복날의 진짜 보양은 특별한 음식을 먹는 데에만 있지 않다. 나와 곁에 있는 사람의 몸과 마음을 잠시 돌아보는 것, 그 마음이 깃든 식탁을 오래도록 기억하는 데에 있다.

황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