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금, 다시 읽는 책] 사랑은 기다림인가, 재회인가…칠석에 다시 읽는 사랑의 책들
- 1년에 단 하루 만나는 견우와 직녀…사랑을 지탱하는 것은 시간일까
- 반세기의 기다림부터 16년 만의 재회까지…문학이 그린 사랑의 여러 얼굴
- 다시 만난다고 사랑이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기다림·기억·후회에 관한 여섯 권

은하수를 사이에 두고 떨어져 있던 두 사람이 1년에 단 한 번 만난다. 사랑 이야기로 이보다 오래되고 간결한 설정도 드물다. 내일인 19일은 음력 7월 7일 칠석이다. 칠석은 견우와 직녀가 까마귀와 까치가 놓은 오작교에서 한 해에 한 번 만난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날이다.
견우와 직녀의 이야기에서 사랑은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만날 수 있는 시간이 하루뿐이라는 사실은 나머지 시간을 그리움으로 바꿔놓는다. 그래서 칠석은 오랫동안 이별과 기다림, 그리고 재회의 상징이 됐다.
하지만 소설 속 사랑은 설화처럼 단순하지 않다. 오래 기다렸다고 반드시 사랑이 깊었다고 할 수 있을까. 다시 만난다고 예전의 두 사람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때로 기다림은 집착이 되고, 재회는 사랑의 회복이 아니라 이미 지나가버린 시간을 확인하는 순간이 된다. 반대로 다시 만날 수 있어도 만나지 않는 선택이 사랑의 마지막 형태가 되기도 한다.
칠석을 하루 앞둔 오늘, ‘지금, 다시 읽는 책’은 기다림과 재회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그린 여섯 권의 소설을 펼쳐본다. 견우와 직녀에게 오작교는 사랑의 완성이었지만 문학의 오작교 너머에는 훨씬 복잡한 질문들이 기다리고 있다.
반세기를 기다린 사람…그것은 사랑이었을까
-‘콜레라 시대의 사랑’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민음사, 2004)

얼마나 오래 기다려야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몇 달이나 몇 년이 아니라 한 사람의 젊음과 중년이 모두 지나가도록 기다렸다면 그 마음은 더욱 숭고해지는 것일까.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은 이 질문을 극단까지 밀어붙인다. 젊은 시절 페르미나 다사를 사랑했던 플로렌티노 아리사는 사랑을 이루지 못한 뒤에도 오랜 세월 그녀를 마음에서 놓지 않는다. 세월은 흐르고 사람들의 삶도 달라진다. 그러나 젊은 날 시작된 사랑은 수십 년이 지나 다시 두 사람의 삶을 가로지른다.
1982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마르케스가 수상 후 처음 발표한 장편소설로, 사랑과 질병, 노화와 시간을 함께 다룬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97·98번으로 출간돼 현재도 판매되고 있다.
칠석의 견우와 직녀가 재회를 위해 1년을 기다린다면 플로렌티노의 기다림은 거의 한 생애에 가깝다. 그러나 마르케스는 그 시간을 무조건 아름다운 순애보로 포장하지 않는다. 플로렌티노의 삶을 따라가다 보면 독자는 오히려 불편한 질문과 마주한다. 한 사람을 평생 잊지 않는 것과 그 사람을 평생 사랑하는 것은 같은 일인가.
그래서 이 작품을 다시 읽는 이유는 마지막 재회보다 그 이전의 긴 시간에 있다. 시간이 사랑을 증명하는지, 아니면 인간이 과거의 감정을 놓지 못하도록 만드는지를 판단하는 일은 결국 독자의 몫으로 남는다.
사랑한 시간은 44일, 붙잡은 시간은 30년
-‘순수 박물관’ (오르한 파묵, 민음사, 2023)

기다림이 길어지면 기억은 때때로 물건의 형태를 갖는다. 오르한 파묵의 ‘순수 박물관’에서 부유한 청년 케말은 먼 친척인 퓌순과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이 사랑을 나눈 시간은 44일이다. 그러나 케말은 이후 339일 동안 그녀를 찾아 헤매고, 2864일 동안 그녀의 곁을 맴돈다. 짧았던 사랑과 비교하면 그 사랑을 기억하고 붙잡으려 한 시간은 압도적으로 길다.
200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파묵이 수상 이후 처음 선보인 사랑소설이기도 하다. 케말은 퓌순과 관계된 물건들을 하나둘 모으기 시작한다. 담배꽁초와 일상의 작은 물건들은 점차 개인적인 기억의 저장소가 되고, 마침내 하나의 박물관으로까지 확장된다.
여기서 작품은 사랑과 소유의 경계를 흔든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는 일과 그 사람의 흔적을 수집하는 일, 기억하는 것과 붙잡아 두려는 것 사이에는 얼마만큼의 거리가 있을까. 칠석 설화에서 기다림은 분명한 끝을 갖는다. 1년이 지나면 오작교가 놓인다. 하지만 케말의 기다림에는 그러한 질서가 없다. 기다림은 다시 기다림을 낳고, 사랑했던 순간보다 사랑을 기억하는 시간이 더 길어진다.
그래서 ‘순수 박물관’은 이번 여섯 권 가운데 가장 불편한 사랑의 책일지도 모른다. 오래 기다렸다는 사실이 사랑의 순수함을 보증해 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16년 만에 다시 만난 사랑…우리는 그때의 우리가 아니다
-‘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문학동네, 2016)

재회는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다. 김금희의 소설집 ‘너무 한낮의 연애’에 실린 동명의 표제작은 이 단순한 사실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대기업에서 일하던 필용은 인사이동으로 자신의 삶이 흔들리기 시작한 어느 날, 16년 전 자신과 ‘연애 비슷한 무언가’를 나눴던 양희를 떠올린다. 우연히 양희가 만든 연극의 흔적을 발견하면서 묻어뒀던 과거가 현재로 다시 흘러들어온다. 작품은 2016년 제7회 젊은작가상 대상을 받았다.
젊은 시절 양희의 사랑은 이상했다. 미래를 약속하거나 관계의 이름을 정하기보다 그날의 감정을 말하는 방식에 가까웠다. 필용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 태도가 16년 뒤 삶이 흔들리는 순간 다시 떠오른다.
중요한 것은 재회 이후다. 시간이 흘러 두 사람에게는 각자의 삶이 생겼고 과거의 감정 역시 과거와 똑같은 모습으로 돌아오지 않는다. 다시 만날 가능성이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오래전 사랑의 빈칸을 채울 수는 없다.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 재회는 사랑의 두 번째 시작이라기보다 기억의 작동 방식에 가깝다. 한때 중요했던 사람은 사라진 뒤에도 완전히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곳에 남아 있다가 예상하지 못한 순간 현재의 삶을 흔든다.
견우와 직녀의 재회가 기다림 끝에 예정된 만남이라면 필용과 양희의 재회는 그 반대다. 예정되지 않았기에 더 당황스럽고, 너무 많은 시간이 흘렀기에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 어쩌면 어른의 사랑에서 재회란 다시 시작하는 일이 아니라, 그때 우리가 정말 사랑했음을 뒤늦게 인정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너무 늦게 도착한 마음…재회해도 되돌릴 수 없는 것들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21)

어떤 사랑은 기다린 것이 아니라 말하지 못한 채 지나가 버린다. 영국 귀족 저택의 집사 스티븐스는 평생 ‘훌륭한 집사’가 되는 일을 삶의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겨왔다.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일 역시 직업적 품위의 일부라고 믿는다. 함께 일했던 켄턴 양에게 마음이 있었지만 그는 끝내 그 감정을 제대로 드러내지 않는다.
결국 켄턴은 다른 남자와 결혼하고 두 사람은 헤어진다. 그리고 약 20년이 흐른 뒤 스티븐스는 다시 그녀를 찾아간다. 젊은 날 말하지 못했던 마음과 다시 마주하는 여행이다.
그러나 두 사람에게 재회는 새로운 출발이 아니다. 세월은 이미 각자의 삶을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남아 있는 나날’은 견우와 직녀 이야기의 반대편에 있는 작품처럼 읽힌다. 견우와 직녀는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 헤어졌지만 스티븐스는 사랑하면서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기다림조차 시작하지 못한 사랑이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야 그는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깨닫는다.
이 작품이 오래 남는 이유 역시 재회의 순간보다 그 이후에 있다. 과거가 돌아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인간에게 남는 것은 무엇인가. 제목 그대로 그것은 아직 ‘남아 있는 나날’이다. 사랑을 놓친 사람이 다시 살아가는 법에 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이 책은 여섯 권 중 가장 조용하지만 가장 오래 남는 재회의 소설이다. 1989년 부커상 수상작. 이시구로는 이후 2017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다시 만날 수 있는데도 만나지 않는다는 것
-‘순수의 시대’ (이디스 워튼, 민음사, 2008)

사랑 이야기라면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순간을 기다리게 마련이다. 그런데 이디스 워튼의 ‘순수의 시대’는 독자가 기다리던 바로 그 순간 앞에서 예상 밖의 방향으로 걸음을 돌린다.
1870년대 뉴욕 상류사회. 젊은 변호사 뉴랜드 아처는 메이 웰랜드와 약혼한 상태에서 그녀의 사촌 엘렌 올렌스카를 만나 강하게 끌린다. 그러나 당시 뉴욕 상류사회의 규범과 체면, 결혼이라는 제도는 개인의 욕망보다 훨씬 강력하다.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달라진 뒤 뉴랜드에게는 엘렌을 다시 만날 기회가 찾아온다. 하지만 여기서 작품은 ‘오랜 세월 끝의 감격적인 재회’라는 익숙한 결말을 택하지 않는다. 사랑을 아름답게 간직하는 방법이 반드시 다시 만나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사랑했던 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과 기억 속에서 사랑했던 모습으로 남겨두는 것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사랑다운 선택일까. 작품은 답을 말하지 않는다. 대신 재회가 모든 사랑의 목표라는 우리의 오래된 믿음을 뒤집는다. 칠석의 사랑이 만남을 위해 존재한다면 ‘순수의 시대’에는 만나지 않음으로써 완성되는 사랑이 있다.
1920년 발표된 ‘순수의 시대’는 이듬해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디스 워튼은 이 작품으로 소설 부문 퓰리처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 작가가 됐다. 국내 민음사판은 2008년 출간돼 현재도 판매되고 있다.
돌아오겠다는 약속…문학만이 허락할 수 있었던 재회
-‘속죄’ (이언 매큐언, 문학동네, 2023)

기다림을 가장 잔인하게 만드는 것은 ‘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이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는 1930년대 영국의 저택에서 시작한다. 세실리아와 로비 사이에서 막 사랑이 시작되려던 순간, 어린 브라이어니의 오해와 잘못된 증언이 두 사람의 삶을 완전히 바꿔놓는다. 로비는 범죄자로 몰리고 이후 전쟁까지 이어지면서 두 사람의 사랑에는 긴 거리와 시간이 놓인다.
그럼에도 로비와 세실리아를 이어주는 것은 다시 만나겠다는 희망이다. 이 작품에서 기다림은 사랑을 유지시키는 힘이지만 동시에 독자를 가장 아프게 만드는 장치가 된다. 전쟁과 폭력, 타인의 잘못으로 헤어진 사람들이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은 현실이 감당하지 못하는 것까지 견디게 한다.
하지만 ‘속죄’를 이번 기사 마지막 책으로 놓은 이유는 이 작품이 재회의 의미를 문학 그 자체까지 확장하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일어난 일을 되돌릴 수 없다면 이야기는 그것을 되돌릴 수 있을까. 실제 삶에서 불가능했던 만남을 소설 속에서는 가능하게 만들 수 있을까.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재회가 누군가의 잘못을 속죄할 수 있을까.
견우와 직녀에게 오작교를 만들어준 것은 까마귀와 까치였다. ‘속죄’에서 인간이 놓을 수 있는 마지막 오작교는 어쩌면 이야기다. 문학이 현실을 바꿀 수는 없지만,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했던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만큼은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보여준다. 한 소녀의 오해가 불러온 파국과 평생에 걸친 속죄를 다룬 소설. 2023년에는 세계문학전집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됐다.
견우와 직녀의 사랑은 분명하다. 사랑하는 두 사람이 헤어졌고, 기다렸으며, 다시 만난다.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서는 한 생애에 가까운 기다림 끝에 재회가 찾아오고, ‘순수 박물관’에서는 기다림이 사랑과 집착의 경계를 무너뜨린다. ‘너무 한낮의 연애’에서는 16년 만의 재회가 지나간 감정을 깨우고, ‘남아 있는 나날’에서는 너무 늦게 도착한 마음이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을 확인한다. ‘순수의 시대’는 다시 만날 수 있는데도 만나지 않는 길을 선택하고, ‘속죄’는 현실이 허락하지 않은 재회를 문학 안에서 다시 만든다.
그래서 칠석을 앞두고 다시 던져볼 만한 질문은 ‘얼마나 오래 사랑할 수 있는가’가 아닐지도 모른다. 사랑은 기다리는 것일까. 다시 만나는 것일까. 어쩌면 사랑은 그 사이에 존재하는 시간 전체에 더 가깝다.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 잊었다고 생각했던 시간, 뒤늦게 후회하는 시간까지도 한때 사랑했던 두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오작교가 놓이지 않더라도 사랑은 그렇게 남는다.
*이주의 신간*
‘아코디언’ (천명관, 창비, 2026)

‘고래’로 2023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천명관이 10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지난 6월 22일 출간된 ‘아코디언’은 한국전쟁 직후인 195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거리로 내몰린 소년 ‘동이’와 아이들의 삶을 따라간다. 오래전 ‘길의 노래’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던 작품을 대폭 개작해 완성했으며, 작가는 출간 당시 자신의 작품 가운데 가장 지난한 과정을 거친 소설이라고 설명했다.
전쟁이 남긴 폭력과 가난 속에서도 사람들을 이어주는 연대와 음악을 그린 작품이다. 이번 주 소개한 여섯 권이 한 사람과 한 사람 사이에 놓인 시간을 들여다본다면, ‘아코디언’은 가장 척박한 시대에도 인간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