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지 마 아이야

라이프2026-08-13
[지금, 다시 읽는 책] 해방은 끝난 사건이 아니다…광복절 다시 읽는 기억과 독립의 책들
한국의 8·15에서 인도의 독립까지…문학으로 다시 보는 세계의 ‘해방’
케냐·동아프리카·베트남에도 남은 식민지의 상흔…역사는 평범한 삶을 통과했다
독립 뒤에도 끝나지 않은 분단·전쟁·기억…해방 이후를 묻는 여섯 권의 책
광복절은 기뻐해야 할 날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삶을 바친 사람들을 기억하고 1945년 8월 15일이 가져온 역사적 전환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러나 문학은 기념식이 멈추는 자리에서 한 걸음 더 간다. 해방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여전히 현재의 일이다. (이미지=AI로 생성)

오는 15일은 광복 81주년이다. 1945년 8월 15일, 한반도는 35년에 걸친 일제 식민지배에서 벗어났다. 해마다 이맘때면 태극기가 걸리고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다시 조명된다. 그러나 광복을 하나의 날짜로만 기억하면 그날까지 견뎌야 했던 수많은 사람의 삶과 그날 이후에도 이어진 역사의 무게는 잘 보이지 않는다. 해방됐다는 사실과 식민지배가 남긴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시선을 세계로 돌리면 8월 15일은 더욱 흥미로운 날짜가 된다. 한국이 해방된 지 정확히 2년 뒤인 1947년 8월 15일, 인도 역시 오랜 영국 식민지배에서 독립했다. 인도의 초대 총리 자와할랄 네루의 임기도 이날 시작됐다. 물론 한국과 인도를 비롯해 케냐, 탄자니아, 베트남이 겪은 식민지배와 독립의 과정은 서로 다르다. 지배 세력도, 저항의 방식도, 독립 이후 맞닥뜨린 정치적 현실도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들의 문학에는 반복해서 등장하는 질문이 있다. 빼앗긴 땅에서 사람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독립은 누구의 희생 위에서 찾아오는가. 그리고 지배자가 떠난 뒤 남겨진 사람들은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을 만들어가는가.

이번 ‘지금, 다시 읽는 책’에서는 익숙한 독립운동 서사에서 조금 벗어나 본다. 한국의 ‘한 명’과 ‘철도원 삼대’에서 출발해 케냐의 응구기 와 티옹오, 탄자니아 출신 압둘라자크 구르나, 인도 출신 살만 루슈디, 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의 작품까지 함께 펼쳤다. 광복절에 다시 읽어야 할 것은 승리의 순간만이 아니다. 해방 이전을 살아낸 사람들과 해방 이후에도 계속 살아가야 했던 사람들의 시간이다.

식민지는 국경보다 먼저 사람의 삶을 바꿨다

-‘울지 마, 아이야’ (응구기 와 티옹오, 은행나무, 2016)

1950년대 케냐. 소년 은조로게에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큰 희망은 거창한 혁명이 아니라 학교에 가는 일이다. 하지만 그가 살아가는 세계는 이미 식민지배에 의해 흔들리고 있다. 케냐인들이 대대로 살아온 토지는 유럽인 농장주의 소유가 됐고, 땅의 주인이었던 사람들은 그곳에서 노동자로 살아간다.

그 배경에서 격렬해지는 것이 영국 식민통치에 맞선 마우마우 독립투쟁이다. 무장투쟁과 식민 당국의 탄압이 거세질수록 정치와는 거리가 있어 보였던 가족의 일상까지 무너지기 시작한다. 학교에 가고 싶었던 한 소년의 성장담은 어느 순간 식민지가 한 개인의 미래를 어떻게 빼앗아가는지 보여주는 이야기가 된다. 작품에는 작가 자신이 성장 과정에서 직접 목격한 마우마우 투쟁의 경험도 짙게 스며 있다.

응구기 와 티옹오는 로터스문학상과 노니노국제문학상 등을 받은 아프리카 현대문학의 대표 작가다. 그가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식민지는 역사책 속 정치체제가 아니다. 누구의 땅에서 살 것인지, 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을지, 가족이 서로를 믿을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일상의 권력이다.

한국의 식민지 경험을 돌아볼 때도 같은 질문이 가능하다. 나라를 빼앗긴다는 것은 국기와 정부만을 잃는 일이었을까. ‘울지 마, 아이야’는 독립을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식민지배가 평범했던 삶을 어떻게 평범하지 않게 만들었는지를 보게 한다.

-‘그후의 삶’ (압둘라자크 구르나, 문학동네, 2022)

제목부터 이번 광복절 기획을 향하는 듯하다. 202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그후의 삶’은 20세기 초 독일이 동아프리카를 식민지배하던 시대에서 시작한다. 오늘날 탄자니아를 포함하는 독일령 동아프리카에서 저항과 진압, 전쟁을 겪은 사람들이 이야기의 중심이다. 노벨위원회 역시 이 작품이 독일의 동아프리카 식민지배와 그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거대한 역사가 지나가는 동안 작품 속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제국의 군대에 들어가고, 가족과 헤어지고, 전쟁에서 상처 입은 채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돌아왔다고 해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몸에는 상처가 남았고 가족은 흩어졌으며 사람들의 기억에는 점령과 폭력이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일하고 사랑하며 새로운 가족과 공동체를 만들어간다.

구르나가 2021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이유 역시 그의 작품 세계와 맞닿아 있다. 노벨위원회는 식민주의의 영향과 서로 다른 문화 사이에서 살아가는 난민의 운명을 깊이 탐구해온 그의 문학을 높이 평가했다.

그래서 ‘그후의 삶’이 던지는 질문은 ‘독립했는가’에서 끝나지 않는다. 식민지와 전쟁을 경험한 뒤 사람은 어떻게 다시 자신의 삶을 소유할 수 있는가. 광복을 과거의 완료형으로만 읽지 않게 만드는 작품이다.

독립의 순간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역사의 시작이었다

-‘한밤의 아이들’ (살만 루슈디, 문학동네, 2011)

1947년 8월 15일 자정.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가 독립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주인공 살림 시나이가 태어난다. 살만 루슈디는 한 개인의 탄생과 새로운 국가의 탄생을 한 시각에 겹쳐놓고 이후 약 30년에 걸친 인도의 역사를 한 사람의 생애처럼 펼쳐낸다.

이 설정만으로도 광복절에 다시 읽을 이유는 충분하다. 한국이 1945년 8월 15일 식민지배에서 벗어난 것처럼 인도 역시 2년 뒤 같은 날짜를 독립의 날로 맞았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8월 15일 이후 곧바로 평온한 시간이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루슈디의 소설에서는 독립과 함께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할이라는 거대한 혼란이 펼쳐진다. 독립국의 성장과 살림의 인생은 함께 부풀어 올랐다가 흔들리고 상처 입는다. 역사는 국가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몸과 가족, 기억 속에서 일어난다는 것이 이 작품을 관통한다.

‘한밤의 아이들’은 1981년 부커상과 제임스 테이트 블랙 메모리얼상을 받았고, 이후 부커상 25주년의 ‘부커 오브 부커스’와 40주년의 ‘베스트 오브 더 부커’에도 선정됐다.

한국 독자가 이 작품을 펼치면 자연스럽게 한 가지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왜 독립을 기념하는 날 이후에도 역사는 그렇게 오래 요동치는가. 독립은 목적지라기보다 새로운 국가가 풀어야 할 수많은 문제의 출발선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소설이다.

-‘철도원 삼대’ (황석영, 창비, 2020)

역사의 중심에는 언제나 대통령이나 장군, 독립운동가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철길을 놓고 기차를 움직이며 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도 식민지와 해방을 통과했다.

황석영의 ‘철도원 삼대’는 한 철도원 가족의 여러 세대를 따라가며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전후, 산업화 시대를 지나 21세기까지 이어지는 노동자들의 삶을 펼쳐낸다. 역사책에서는 몇 줄로 지나가는 시대가 이 작품에서는 누군가의 일터와 가족사, 생계와 투쟁의 시간으로 구체화된다.

황석영은 ‘무기의 그늘’로 만해문학상, ‘오래된 정원’으로 이산문학상, ‘손님’으로 대산문학상을 받은 작가다. ‘철도원 삼대’의 영어판 ‘Mater 2-10’은 2024년 인터내셔널 부커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이 소설을 광복절에 펼치는 이유는 독립운동의 장면만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다. 철도라는 공간 자체가 근대화와 식민지 수탈, 노동과 이동이 복잡하게 교차했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시대가 바뀌었다는 선언이 내려진 다음 날에도 출근해야 했고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철도원 삼대’는 그래서 광복을 역사의 위쪽이 아니라 아래쪽에서 바라보게 한다. 해방을 만들어낸 역사에는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노동자와 민중의 시간이 함께 놓여 있었다.

국가는 해방됐지만 모든 사람이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한 명’ (김숨, 현대문학, 2016)

김숨의 ‘한 명’은 매우 불편한 가정에서 시작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가 공식적으로 단 한 명만 남은 어느 미래의 날이다.

주인공은 피해 사실을 등록하지 않은 채 오랫동안 자신의 과거를 감추고 살아온 여성이다. 마지막 생존자가 남았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억눌러왔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작품은 실제 피해자들의 수많은 증언을 바탕으로 구성됐으며, 전쟁 당시의 폭력뿐 아니라 피해 이후 이어져온 긴 삶까지 함께 바라본다.

김숨은 이상문학상과 현대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여러 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한 명’ 이후에도 ‘흐르는 편지’ 등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경험과 기억을 문학으로 기록하는 작업을 이어왔다.

이 작품 앞에서는 광복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달라진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식민통치는 끝났지만 피해자가 겪은 고통과 기억까지 이날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한 명’은 이번 여섯 권 가운데 ‘해방은 끝난 사건이 아니다’라는 제목과 가장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는 작품​이다. 살아남은 사람이 있는 동안만 기억해야 하는 것인지, 마지막 증언자가 사라진 뒤에도 사회는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묻는다.

-‘동조자’ (비엣 타인 응우옌, 민음사, 2023)

베트남의 역사는 한국과 같지 않다. 프랑스 식민지배와 일본의 점령, 독립운동과 제1차 인도차이나전쟁, 남북 분단과 베트남전쟁으로 이어지는 역사에는 베트남만의 복잡한 맥락이 있다.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는 그 가운데 베트남전쟁이 끝나는 시점에서 출발한다. 주인공은 남베트남군 장교인 동시에 북베트남의 비밀요원이다. 프랑스인 아버지와 베트남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라는 설정까지 더해지며 식민주의와 냉전, 동양과 서양, 승자와 패자 사이에 놓인 정체성을 한 몸에 품는다.

작가 역시 단순한 관찰자가 아니다. 비엣 타인 응우옌은 1975년 사이공 함락 당시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한 베트남계 미국 작가다. ‘동조자’는 그의 첫 장편소설로 2016년 퓰리처상 소설 부문을 수상했으며 앤드루 카네기 메달 등 여러 상을 받았다.

광복절에 베트남전쟁 소설을 읽는 이유는 두 나라의 역사를 같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반대다. 각기 다른 식민지 경험을 거친 사회가 독립 이후 냉전과 전쟁이라는 또 다른 세계사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갈라졌는지를 비교해보기 위해서다.

‘동조자’가 끝없이 묻는 것은 ‘당신은 어느 편인가’라는 질문이다. 그러나 한 인간의 기억과 정체성은 그렇게 간단하게 둘로 나뉘지 않는다. 국경은 다시 그을 수 있어도 사람의 기억까지 선 하나로 나눌 수는 없다.

광복절은 기뻐해야 할 날이다. 나라를 되찾기 위해 삶을 바친 사람들을 기억하고 1945년 8월 15일이 가져온 역사적 전환의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 그러나 문학은 기념식이 멈추는 자리에서 한 걸음 더 간다. 해방은 과거에 일어난 사건이지만, 그것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는 여전히 현재의 일이다.

*이주의 신간*

우리와 다른 듯 닮은 식민지의 시간 : ‘꽃 피는 시절’ (양솽쯔, 문현선 옮김, 마티스블루, 2026)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였던 시절, 바다 건너 타이완 역시 일본 제국의 지배 아래 있었다. 올해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은 타이완 작가 양솽쯔의 첫 장편소설 ‘꽃 피는 시절’은 그 시대 타이완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지난 5월 국내 출간된 이 작품은 현대의 대학생이 일제 식민지배 아래 있던 1920년대 타이완으로 이동한다는 타임슬립 설정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과거로 향하는 판타지적 장치는 결국 ‘타이완 사람은 자신의 역사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가’라는 현실적인 질문으로 이어진다. 중국의 오랜 역사 대신 식민지 시기의 타이완을 바라보며 그 시대 여성들의 삶과 관계, 정체성을 복원한다.

양솽쯔는 ‘1938 타이완 여행기’로 2024년 전미도서상 번역문학 부문을 수상한 데 이어 올해 타이완 작가 최초로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받았다. ‘꽃 피는 시절’ 역시 그가 지속해온 식민지 타이완과 여성의 삶에 대한 문학적 탐구의 출발점에 해당하는 작품이다.

광복절을 앞두고 이 작품이 특별하게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과 타이완의 식민지 경험을 동일하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같은 일본 제국의 지배를 경험한 두 사회가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고 문학으로 다시 불러내는지는 함께 생각해볼 수 있다.

해방 이후 81년. 다른 나라가 자신의 식민지 시대를 기억하는 방식을 읽어보는 것 역시 우리의 광복을 조금 다른 각도에서 되돌아보는 방법이다.

황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