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의 위기

라이프2026-05-13
“AI·영상 시대, ‘직접 읽는 능력’이 희소한 권력이 된다”

AI가 인간을 대신해 글을 읽고 요약해주는 시대, 한국 성인 10명 중 6명 이상이 지난 1년간 책 한 권도 손에 들지 않은 것으로 집계됐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 3월 공개한 ‘2025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다. 성인 독서율이 38.5%로 떨어지며 1994년 조사 시작 이래 최저치를 갈아치웠다. 2년 전 조사보다 4.5%포인트 내려앉은 수치로, 연간 평균 독서량도 2.4권에 그쳐 직전 조사 대비 1.5권 줄었다. 전 연령대가 일제히 뒷걸음질친 가운데, 20대(만 19~29세)만 75.3%로 유일하게 소폭 반등하며 눈길을 끌었다.

수치 이면의 현실은 더 복잡하다. 소득 계층 간 독서 격차가 뚜렷하게 갈렸다. 월평균 소득 200만 원 이하 계층의 독서율은 13.4%에 머문 반면, 500만 원 이상 고소득층은 56.1%로 네 배 이상 차이를 보였다. 60세 이상 고령층 독서율도 14.4%에 불과했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이미 불균등하게 분배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이 같은 현상을 정면으로 다룬 책이 나왔다. 독일 미디어학자 크리스토프 엥게만은 신간 ‘읽기의 위기’에서 텍스트와 독서가 이중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진단한다. 생성형 AI가 방대한 텍스트를 실시간으로 압축해 전달하고, 유튜버들이 직접 읽고 이해한 내용을 영상으로 가공해 제공하는 사이, 스스로 읽는 독서 계층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독서의 ‘위임’ 현상으로 규정한다. 소셜미디어와 영상 플랫폼이 정보 습득의 주요 경로로 자리잡으면서, 사람들은 텍스트를 직접 읽는 대신 타인에게 그 역할을 맡기고 결과물만 영상으로 소비한다는 분석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전문가·아나운서·배우 등이 책을 요약하고 낭독하고 해설하는 콘텐츠 소비가 빠르게 늘고 있다.

이 흐름은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5 방송매체 이용행태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를 이용하고 있으며, OTT 콘텐츠 가운데 숏폼 이용률은 78.9%에 달했다. 텍스트를 직접 읽는 대신 짧고 압축된 영상으로 정보를 소비하는 경향이 이미 대세로 자리잡았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그러나 엥게만은 이 현실을 단순히 비관하지 않는다. 오히려 역설적 기회를 강조한다. AI와 유튜버가 대신 읽어주는 시대일수록, 스스로 읽고 판단하는 능력이 더욱 희소하고 가치 있는 역량이 된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저자는 중세 유럽의 라틴어 사례를 든다. 소수 성직자와 지배층만이 라틴어를 구사하며 지식 권력을 독점했듯, 오늘날에는 ‘스스로 읽는 능력’이 새로운 형태의 권력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누구나 텍스트에 접근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로 읽는 사람은 소수다. 그 소수가 이른바 ‘텍스트 노동자’라는 새로운 전문가 계층을 형성하며, 중세 성직자처럼 차별화된 위치를 점하게 된다는 분석이다.

엥게만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다. AI 시대에도 왜 스스로 읽어야 하는가. 그 답 역시 단순하다. 읽는 행위 자체가 희소해질수록, 그 능력을 가진 사람의 가치는 올라간다. ‘읽기의 위기’는 동시에 ‘읽는 자의 기회’이기도 하다.

김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