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에 대하여

라이프2026-09-15
[지금, 다시 읽는 책] 민주주의는 투표날에만 작동하지 않는다…‘세계 민주주의의 날’ 다시 읽는 자유와 권력에 얽힌 책들
  • 백지표를 던진 시민부터 독재자의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까지…문학이 기록한 권력의 얼굴
  • 선거는 계속되는데 민주주의가 무너진다면…제도보다 중요한 관용과 절제
  • 9월 15일 출간 ‘자유에 대하여’…민주주의가 지켜야 할 ‘자유’의 의미를 다시 묻다
세계 민주주의의 날을 맞아, 투표 이후에도 계속 작동해야 하는 자유와 권력의 균형을 책을 통해 다시 생각해본다. (이미지=AI로 생성)

선거일이면 사람들은 투표소로 향한다. 투표용지를 받아 자신의 선택을 표시하고 투표함에 넣는다. 개표가 끝나고 당선자가 결정되면 선거는 끝난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역시 그날 해야 할 일을 모두 마친 것일까.

15일은 유엔이 정한 ‘세계 민주주의의 날(International Day of Democracy)’이다. 유엔총회는 2007년 결의를 통해 이날을 지정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되새기는 계기로 삼도록 했다. 올해는 특히 시민의 다양한 목소리가 실제 의사결정 과정에 반영되는 ‘숙의민주주의(deliberative democracy)’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주의를 투표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선거가 끝난 뒤에도 시민은 말할 수 있어야 하고 권력을 비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인정하는 태도와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 개인의 권리를 지키는 장치 역시 함께 작동해야 한다.

문학과 논픽션은 이런 민주주의의 조건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보여준다. 시민 대부분이 백지표를 던진 도시를 상상한 주제 사라마구부터 실제 독재정권 아래에서 살아간 사람들을 그린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권리를 빼앗긴 사회를 상상한 마거릿 애트우드가 있다. 정치학자들은 선거와 의회가 남아 있는데도 민주주의가 무너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세계 민주주의의 날, 자유와 권력이 충돌하는 순간을 기록한 책 다섯 권을 다시 펼쳐본다.

투표했는데 왜 국가가 두려워했을까

-눈뜬 자들의 도시 (주제 사라마구, 해냄, 2022년 탄생 100주년 기념 스페셜 에디션)

비가 쏟아지는 어느 선거일. 투표소를 찾는 사람이 거의 없어 관계자들이 초조해진다. 오후가 되자 시민들이 몰려와 투표를 마치지만 개표 결과는 예상 밖이다. 상당수가 아무 후보도 선택하지 않은 ‘백지표’다. 다시 치러진 선거에서는 백지표가 83%까지 늘어난다.

시민들은 투표소를 부수지도, 선거를 방해하지도 않았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투표했고 백지표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의사를 표시했을 뿐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정상적인 정치적 선택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배후 세력이 있을 것이라고 의심하고 시민을 감시하기 시작한다.

1998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포르투갈 작가 주제 사라마구는 이 기묘한 설정을 통해 민주주의의 역설을 파고든다. 시민에게 선택할 권리가 있다면 권력은 자신이 예상하지 못한 선택도 받아들여야 하는가. 민주주의가 시민의 선택을 존중하는 제도라면 그 선택의 범위는 어디까지 허용돼야 하는가.

‘눈뜬 자들의 도시’는 유명한 ‘눈먼 자들의 도시’와 같은 세계를 배경으로 한다. 전작이 갑자기 눈이 먼 사람들을 통해 인간성을 시험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오히려 ‘눈을 뜬 시민’과 그들을 바라보는 국가 권력이 시험대에 오른다.

독재자는 혼자 만들어지지 않는다

-염소의 축제 1·2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문학동네, 2010년 국내 출간)

도미니카공화국을 30년 넘게 통치했던 라파엘 트루히요.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염소의 축제’는 그의 독재와 암살이라는 실제 역사를 소설 속으로 가져온다.

작품은 독재자 트루히요와 그를 제거하려는 사람들, 독재로 인해 삶이 뒤틀린 사람들의 시간을 교차한다. 하지만 소설이 보여주는 것은 한 명의 잔혹한 권력자만이 아니다. 그 주변에서 충성을 경쟁하고 권력의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이 함께 등장한다.

독재가 오래 지속되면 사람들은 명령을 받기 전에 스스로 행동을 조절한다. 무엇을 말해서는 안 되는지, 누구를 비판해서는 안 되는지 학습한다. 권력자의 명령과 개인의 자기검열 사이의 경계가 점점 흐려지는 것이다.

바르가스 요사는 201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문학이 ‘권력 구조’를 보여주면서 그 안에서 개인이 벌이는 저항과 반란, 패배를 그려냈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염소의 축제’는 독재가 한 사람의 힘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공포와 충성, 침묵이 하나의 구조가 되면서 지속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권리가 사라지면 통제는 일상이 된다

증언들 (마거릿 애트우드, 황금가지, 2020년 국내 출간)

마거릿 애트우드의 ‘증언들’은 ‘시녀 이야기’ 이후 약 15년이 흐른 가상의 신정국가 길리어드를 배경으로 한다.

여성의 교육과 이동, 결혼과 출산까지 체제가 통제하는 사회다. 작품은 서로 다른 위치에 놓인 세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길리어드 내부를 들여다본다. 누군가는 권력 체제 안에서 살아남았고, 누군가는 그 사회에서 태어나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성장했다.

독재와 권위주의는 정치 뉴스 속 거대한 사건으로만 나타나지 않는다. 어떤 옷을 입을 수 있는지,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 누구와 함께 살 수 있는지까지 국가가 결정하기 시작할 때 권력은 개인의 일상으로 내려온다.

‘증언들’은 2019년 버나딘 에바리스토의 ‘소녀, 여자,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커상을 공동 수상했다. 디스토피아라는 극단적인 설정을 사용하지만 작품이 묻는 질문은 현실적이다. 개인의 권리는 어느 순간부터 사라지기 시작하는가. 그리고 한번 잃어버린 자유를 되찾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탱크가 오지 않아도 민주주의는 무너질 수 있다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어크로스, 2018년 국내 출간)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장면을 떠올리면 군인이 거리로 나오고 의회가 폐쇄되는 군사 쿠데타부터 생각하기 쉽다. 하버드대 정치학자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다른 장면을 보여준다.

선거가 계속되고 의회와 법원도 존재한다. 언론도 여전히 뉴스를 내보낸다. 겉으로 보면 민주주의의 외형은 유지된다. 그러나 정치적 경쟁자를 정당한 상대가 아니라 제거해야 할 적으로 취급하고 언론이나 사법기관 같은 견제 세력을 압박하기 시작한다면 내부의 규칙은 조금씩 달라질 수 있다.

두 저자가 특히 강조하는 것은 ‘상호 관용(mutual toleration)’과 ‘제도적 자제(institutional forbearance)’다. 정치적 경쟁자에게도 정당하게 경쟁할 권리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고, 법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라 해도 정치적 상대를 무너뜨리기 위해 끝까지 밀어붙이지 않는 태도다.

법과 제도가 존재한다고 민주주의가 저절로 유지되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다. ‘눈뜬 자들의 도시’가 시민의 선택을 권력이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물었다면 이 책은 한 걸음 더 나아간다.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헌법 조문인가, 아니면 그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태도인가.

21세기 독재는 국경을 넘어 연결된다

-주식회사 독재정치 (앤 애플바움, 책과함께, 2025년 국내 출간)

독재라는 말을 들으면 한 명의 강력한 지도자가 한 국가를 장악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기 쉽다. 앤 애플바움은 ‘주식회사 독재정치’에서 21세기 권위주의를 그런 모습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원제는 ‘Autocracy, Inc.’다. 오늘날 권위주의 국가들이 하나의 이념이나 국제기구로 묶여 있는 것은 아니지만 돈과 기술, 선전과 정보통제 방식 등을 공유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것이 책의 핵심 문제의식이다.

금융망은 제재를 피하는 데 이용될 수 있고 디지털 기술은 시민을 감시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소셜미디어와 정보 생태계는 선전과 허위정보가 퍼지는 공간이 되기도 한다. 권위주의 문제를 더 이상 한 국가 내부의 정치 문제로만 보기 어려워진 이유다.

애플바움은 소련의 강제수용소 체제를 다룬 ‘굴라크’로 퓰리처상을 받은 저널리스트이자 역사 연구자다. ‘주식회사 독재정치’는 과거 독재자 개인에게 집중했던 시선을 권위주의 국가들이 서로 연결되는 현대의 구조로 확장한다.

사라마구의 시민들은 투표했다. 바르가스 요사의 인물들은 독재자의 시대를 살아갔고, 애트우드의 여성들은 이미 자유가 사라진 사회에서 살아간다.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민주주의가 제도 내부에서 서서히 약해지는 과정을 분석했고 애플바움은 권위주의가 국경까지 넘어 연결되는 시대를 보여준다.

서로 다른 시대와 공간을 다룬 책이지만 거꾸로 읽으면 민주주의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도 드러난다. 자신과 다른 선택을 인정하고,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지 않도록 견제하며, 개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시민이 계속 말하고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투표는 민주주의의 가장 중요한 장치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투표가 끝났다는 이유로 시민의 역할까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투표가 끝난 이후가 민주주의의 상태를 더욱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일 지도 모른다.

이주의 신간

자유는 ‘방해받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자유에 대하여 (티머시 스나이더, 아르테, 2026년 9월 15일)

이번 ‘이주의 신간’은 세계 민주주의의 날인 9월 15일 국내에 출간되는 티머시 스나이더의 ‘자유에 대하여(On Freedom)’다. ‘폭정’과 ‘피에 젖은 땅’ 등으로 알려진 역사학자인 스나이더가 이번에는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사용해온 ‘자유’라는 단어 자체를 파고든다.

우리는 흔히 자유를 누군가에게 방해받지 않는 상태로 생각한다. 국가가 간섭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자신의 행동을 억압하지 않는다면 자유롭다고 보는 방식이다. 하지만 스나이더는 억압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한 자유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배울 기회가 없고 자신의 판단을 형성할 환경이 부족하며 원하는 삶을 선택할 현실적인 능력마저 없다면 형식적으로 간섭받지 않는다고 해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자유를 단순히 ‘무엇으로부터 벗어난 상태’가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만들어갈 수 있는 능력과 조건의 문제로 확장한다.

앞서 소개한 다섯 권이 대부분 자유가 사라지거나 민주주의가 약해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줬다면 ‘자유에 대하여’는 반대로 질문한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통해 지키려고 하는 그 ‘자유’란 정확히 무엇인가.

황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