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영화제

라이프2026-05-13
박찬욱, 칸 심사위원장으로 ‘변방의 역사’ 마감…한국 영화 3편도 칸 수놓는다

박찬욱 감독이 한국인 최초로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 심사위원장을 맡으며 세계 최고 권위의 영화제 전면에 섰다.

제79회 칸국제영화제가 12일(현지시간) 프랑스 남부 도시 칸에서 개막한 가운데, 박 감독은 이날 심사위원단 기자회견에 참석해 심사 원칙과 한국 영화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아시아 감독이 칸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은 것은 2006년 제59회 영화제에서 왕자웨이(왕가위) 감독이 맡은 이래 20년 만이다.

제79회 칸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 박찬욱 감독(사진=연합뉴스)

박 감독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심사 기준으로 오직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들었다. 그는 개막 전날 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상들은 50년이나 100년 동안 남을 작품들에 주어져야 한다”고 밝히며, 국적·장르·정치적 이념 같은 외부 요인을 배제하고 작품 자체의 가치만으로 평가하겠다는 원칙을 피력했다.

예술과 정치의 관계를 묻는 질문에도 단호한 소신을 드러냈다. 박 감독은 “정치와 예술은 서로 대립되는 개념으로 생각하는 자체가 이상한 일”이라며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다고 해서 예술의 적이 아니며, 정치적 주장이 분명하더라도 예술적으로 성취되지 않는다면 선전에 불과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인 최초 심사위원장이라는 역사적 위치에 대해서는 감회와 함께 전임 세대에 대한 예우를 잊지 않았다. 그는 “한국 영화가 변방 취급받던 시절에도 훌륭한 감독과 배우들이 있었다”며 “국제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선배들 생각이 많이 난다”고 회상했다. 이어 한국 영화가 중심에 진입한 것이 단순히 실력만의 결과가 아니라, 세계 영화의 중심 자체가 확장된 덕분이라는 시각도 내놨다.

‘깐느 박’이라는 별명이 말해주듯 박 감독은 20여 년에 걸쳐 칸과 깊은 인연을 쌓아왔다. 2004년 ‘올드보이’로 심사위원대상을 수상하며 칸과 본격적인 관계를 맺은 그는, 2009년 ‘박쥐’로 심사위원상, 2022년 ‘헤어질 결심’으로 감독상을 받았다. 2017년 제70회에는 경쟁부문 심사위원을 역임한 바 있다.

심사위원장 위촉 수락 과정도 화제를 모았다. 박 감독은 이날 “심사위원을 이전에 한 차례 해본 경험이 있어 상당한 중압감을 수반하는 자리임을 잘 알았기에 잠시 고민했다”고 토로하면서도, “칸영화제에서 그간 받은 것들을 생각하면 이제 봉사할 때가 됐다는 생각에 이르렀다”고 수락 이유를 밝혔다.

올해 칸에는 한국 영화 3편이 각 부문에 이름을 올려 한국 영화계의 존재감을 더욱 부각시키고 있다. 나홍진 감독이 10년 만에 선보이는 신작 ‘호프’가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한국 영화의 경쟁부문 진출은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2022) 이후 4년 만이다. 비무장지대 호포항을 배경으로 정체불명의 존재가 나타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으로, 칸 상영 버전의 러닝타임은 160분에 달한다.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과 함께 마이클 패스벤더, 알리시아 비칸데르, 테일러 러셀 등 할리우드 배우들이 출연한다.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이트 스크리닝에는 연상호 감독의 ‘군체’가 초청됐다. 원인 모를 감염 사태로 봉쇄된 건물 안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예측 불가능한 형태로 진화하는 감염자에 맞서는 좀비물이다.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등이 출연하며 15일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레드카펫 행사와 함께 상영회가 열릴 예정이다. 정주리 감독의 ‘도라’는 비경쟁 독립 섹션인 감독주간에 초청됐다.

박 감독은 황금종려상을 비롯해 심사위원대상, 감독상, 남녀주연상, 각본상 등 경쟁부문 주요 수상작 선정에 참여하며, 오는 23일 폐막식에서 심사위원단을 대표해 황금종려상을 발표하고 시상하게 된다. 심사위원단에는 미국 배우 데미 무어, 스웨덴 배우 스텔란 스카스가드, 중국계 미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 벨기에 감독 라우라 완델 등이 함께한다.

김소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