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의과대학

기술, 산업2026-08-07
[현장] AI 의료를 이끌 인재는 무엇이 달라야 하나…글로벌 석학의 답은?
  • AI 판단 맹신하지 않고 환자·의사의 맥락과 책임까지 살펴야
  • 반도체·바이오·AI 연결해 예측·예방·정밀의료 구현할 융합 역량 필요
  • 기초·응용 경계 넘어 인문학·예술까지…“기술은 정밀하되 치유는 따뜻하게”
의학 분야 글로벌 석학인 루크 리(Luke P. Lee·한국명 이평세)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달 31일 열린 ‘2026 대한민국 AI혁신인재 커넥트’에서 ‘K-BIGHEART의 비전: 글로벌 헬스케어를 이끌 차세대 AI혁신인재 양성’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했다. (사진=더오피니언타임즈)

이제 인공지능(AI)은 환자의 증상과 검사 결과를 분석해 질병 가능성을 제시하고, 의료진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위험 신호를 찾아낼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 그러나 AI가 내놓은 답이 항상 환자의 실제 상태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환자의 병력과 생활환경, 증상이 나타난 과정까지 종합하지 않으면 정밀해 보이는 결과가 오히려 불필요한 불안이나 잘못된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AI 의료가 빠르게 발전할수록 중요한 것은 더 뛰어난 모델을 만드는 기술만이 아니다. AI의 결과를 어디까지 받아들일지 판단하고, 환자와 의료진에게 실제로 필요한 정보를 설계하며, 기술이 잘못 작동했을 때의 윤리적·사회적 책임까지 고려할 사람의 역할은 여전히 필수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AI 의료를 이끌 혁신인재는 코딩과 생명과학을 함께 공부한 기술자만을 뜻하지 않는다. 인간의 건강이라는 목적 아래 과학과 공학, 의학과 인문학을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관련 의학 분야 글로벌 석학인 루크 리(Luke P. Lee·한국명 이평세)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는 지난달 31일 열린 ‘2026 대한민국 AI혁신인재 커넥트’에서 ‘K-BIGHEART의 비전: 글로벌 헬스케어를 이끌 차세대 AI혁신인재 양성’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진행했다.

리 교수는 포스텍 석학교수이자 글로벌 헬스케어 연구·기술과 인재양성을 위한 K-BIGHEART(글로벌 헬스케어 의공학 연구소)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미국 UC버클리 석학교수와 스위스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석좌교수를 거쳐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부총장을 지냈다. K-BIGHEART는 AI와 데이터, 생물학·화학·물리학·공학·예술 등을 결합한 교육과 연구를 통해 글로벌 보건·의료 문제를 해결할 차세대 인재를 양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리 교수가 제시한 인재상은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사람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AI가 놓치는 인간의 맥락을 보고, 반도체와 바이오 기술을 연결해 의료 접근성을 높이며, 서로 다른 전공자와 협력해 실제 환자와 사회가 사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만드는 사람이다. 강연의 핵심은 정밀한 기술의 최종 목적이 인간의 치유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AI가 놓친 인간의 맥락까지 볼 수 있어야 한다

강연 첫 머리에서 리 교수는 자신의 손에 마비 증상이 나타났을 때 AI에 원인을 물었던 경험을 소개하며 AI가 환자의 전체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면 지나치거나 부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례로 설명했다. (사진=더오피니언타임즈)

강연 첫 머리에서 리 교수는 자신의 손에 마비 증상이 나타났을 때 AI에 원인을 물었던 경험을 소개했다. AI는 뇌질환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병원에 가야 한다고 답했지만, 실제 증상은 신경이 눌리면서 발생한, 단순한 것이었다. 리 교수는 이를 심각한 질환을 먼저 의심하는 것이 안전한 대응일 수는 있지만, AI가 환자의 전체 상황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면 지나치거나 부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사례로 설명하며 말을 이어갔다.

“우리는 AI에 많이 기대고 있고 AI도 인간에게 도움도 많이 줍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전인적인 진료 맥락을 잊고 기계적으로만 판단하면 잘못 진단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법적이고 윤리적인 책임을 누가 질 것인지도 생각해야 합니다. 인간을 잊은 AI 의료가 아니라 환자와 의사 선생님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해결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AI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인간에게 어떻게 더 많은 도움을 줄 것인지 생각해야 합니다.”

리 교수는 인간 중심 AI 의료를 구현할 수단으로 생명의료 집적회로인 ‘Biomedical IC’를 제시했다. 반도체 칩에 미세한 유체 통로와 생체정보 분석 기능을 결합해 혈액이나 타액 등 소량의 검체에서 DNA·RNA와 단백질 같은 분자 정보를 읽고, AI가 이를 분석하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실제로 기존 의료진의 경험과 단일 검사만으로는 한 번에 살피기 어려운 여러 생체표지자를 이 플랫폼으로 함께 분석하면 암과 감염병, 신경계 질환 등의 위험을 보다 세밀하게 살필 수 있다. 환자에게 어떤 약물이 적합할지를 예측하는 정밀의료에도 활용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리 교수는 인간 중심 AI 의료를 구현할 수단으로 생명의료 집적회로인 ‘Biomedical IC’를 제시했다. 반도체 칩에 미세한 유체 통로와 생체정보 분석 기능을 결합해 혈액이나 타액 등 소량의 검체에서 DNA·RNA와 단백질 같은 분자 정보를 읽고, AI가 이를 분석하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사진=더오피니언타임즈)

“아직 의사 선생님의 진단 방법이 제한될 수 있지만, 칩을 이용하면 섬세하게 여러 질병의 표지자를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정보를 한꺼번에 보고 어떤 약이 사람에게 적합한지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암뿐만 아니라 감염병과 신경계 질환 등 여러 질병을 보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정밀한 정보가 AI와 결합하면 환자와 의사에게 더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기술은 의사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도록 돕는 방향으로 가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AI 의료 인재에게는 모델의 성능을 높이는 능력과 함께 의료 현장의 한계를 이해하는 역량이 요구된다. 무엇을 측정해야 하는지, AI에 어떤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지, 결과를 환자와 의료진이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까지 연구 단계에서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 리 교수의 생각이다.

반도체·바이오·AI를 연결해 의료의 문턱을 낮춰야 한다

이날 리 교수가 제시한 글로벌 헬스케어 비전은 대형 병원에서 사용하는 고가의 정밀진단 장비에 머물지 않았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반도체 제조 역량에 생물학적 분석 기능과 AI를 결합해, 작고 저렴하면서도 여러 건강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진단 플랫폼을 만들자는 구상이다.

그러면서 리 교수는 영국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에 나오는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본다”는 구절을 연구 비전과 연결했다. 모래알처럼 작은 칩에서 사람의 혈액과 환경에 담긴 DNA와 RNA의 흔적을 읽고, 스마트폰과 데이터망을 통해 전 세계 의료기관과 연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볼 수 있다면, 작은 칩에서 인간과 지구의 건강 상태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요. 혈액과 환경에서 DNA와 RNA의 지문을 실시간으로 읽고 스마트폰을 통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진단 시스템을 만들 수 있습니다. 사람과 농업, 환경의 건강 정보를 연결하면 감염병이 확산된 뒤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조기에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분자진단 네트워크는 글로벌 헬스케어를 보다 능동적이고 예측 가능한 체계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러한 구상은 인간과 동물, 환경의 건강을 하나의 체계로 보는 ‘원헬스’와 연결된다. 새로운 감염병은 인간에게서만 시작되지 않는다. 동물과 식물, 물과 토양의 변화를 함께 살펴야 질병이 어디서 발생하고 어떤 경로로 퍼지는지 보다 일찍 파악할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리 교수는 K-BIGHEART의 목적을 이야기하기도 했다. K-BIGHEART는 학생들이 AI와 바이오 기술을 이용해 의료의 접근성과 정밀성을 높이는 Biomedical IC 기술을 개발하고, 지속 가능한 원헬스 실현에 기여하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문제 해결 중심의 과학 탐구와 융합 교육, 멘토링, 국제 공동연구를 통해 학생이 글로벌 보건 문제를 실제 연구과제로 다루게 한다는 계획이다.

“앞으로는 병원이나 보건소에 가서 한 가지 질병만 기다리며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칩에서 여러 정보를 함께 보고 AI가 판단을 도울 수 있습니다. DNA와 RNA 등 분자 수준의 정보를 살펴보면 질병을 더 일찍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방의료와 예측의료, 정밀의료를 가능하게 만드는 플랫폼이 될 수 있습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 환경의 정보를 함께 분석하면 질병이 어떻게 이동하는지도 실시간에 가깝게 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의료의 접근성을 높이고 글로벌 보건안보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리 교수는 한국의 제조 역량을 활용해 진단 칩의 가격을 낮추고 의료 접근성이 부족한 국가에도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의료를 이끌 인재는 기술적 완성도와 사업성뿐 아니라 의료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사진=더오피니언타임즈)

그러나 기술의 성능만큼 중요한 것은 누가 사용할 수 있느냐다. 정밀진단 기술이 고가의 장비와 의료 인프라를 갖춘 국가에만 머물면 글로벌 헬스케어의 격차를 줄일 수 없다.

이에 대해 리 교수는 한국의 제조 역량을 활용해 진단 칩의 가격을 낮추고 의료 접근성이 부족한 국가에도 보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의료를 이끌 인재는 기술적 완성도와 사업성뿐 아니라 의료 혜택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도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의미다.

과학과 공학만 잘해서는 인간 중심 의료를 만들 수 없다

이날 리 교수는 미래 의료 인재를 양성하려면 순수과학과 응용과학을 별개의 영역으로 나누는 교육부터 바꿔야 한다고도 말했다. 기초과학은 현실의 문제와 무관한 연구이고, 응용과학은 이미 발견된 지식을 제품으로 만드는 활동이라는 이분법으로는 새로운 의료혁신을 만들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런 리 교수가 강조한 방향은 ‘응용을 지향하는 기초연구’다.

“순수과학과 기초과학, 응용과학이 서로 떨어져 있다는 말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구분입니다. 과학은 하나인데 왜 따로 떨어져 있어야 합니까. 기초연구를 하더라도 그 연구의 목적이 있어야 합니다. 파스퇴르가 기초연구와 응용연구를 함께 생각했듯이 응용을 지향하는 기초연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새로운 발견을 만들면서도 사람과 사회에 실제 영향력을 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리 교수는 생명의료 공학과 과학기술에 수학은 물론 예술과 인문학까지 결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의료 인재에게 필요한 융합은 생명과학과 컴퓨터공학을 함께 배우는 수준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생명의료 공학과 과학기술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통합과학과 공학, 예술과 인문학, 수학이 필요합니다. 가령 시는 본질을 깨닫는 압축적인 직관을 주고, 문학은 미래 시나리오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공감하는 능력을 키워줍니다. 미술과 디자인은 기술을 시각화하고 사용자에게 필요한 시스템을 만드는 데 도움을 줍니다. 예술은 고정관념을 깨는 질문을 과감하게 하도록 만듭니다.”

이날 리 교수의 강연에는 예술에서 과학적 영감을 얻은 사례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블레이크의 시에서 작은 진단 칩의 가능성을 떠올리고, 빈센트 반 고흐와 바실리 칸딘스키의 그림에서 나노입자와 빛의 상호작용을 연상했다. 예술을 교양으로 곁들이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가 기존의 방법과 다른 질문을 만들게 하는 연구 자원으로 바라본 것이다.

기존 지식을 의심하는 태도도 중요하다. 리 교수는 교과서에 실린 이론이라도 실제로 어떤 실험과 증거를 통해 성립했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미 정답으로 굳어진 지식을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가정과 증거 사이의 빈틈을 발견하고 이를 실험으로 확인하는 사람이 혁신을 만든다는 것이다.

“의사가 아니더라도 필요한 의학 정보를 스스로 찾아 공부하고, 필요하면 전문가에게 물어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 분야가 함께 일하기 위해서는 겸손한 정신이 필요하고, 혁신적인 디자이너가 되려면 창의적인 정신이 필요합니다. 나노·마이크로 기술을 다루는 정밀함과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는 목적의식도 갖춰야 합니다. 물리와 생물, 화학과 공학, 의학을 연결할 수 있는 능동적인 학습 태도가 필요합니다. 이런 사람을 키워야 인간 중심의 AI 의료를 만들 수 있습니다.”

리 교수는 강연 마지막에 “기술은 차갑고 아주 정밀할 수 있지만 치유는 따뜻하고 인간 중심이어야 한다”며 자신이 그리고 있는 AI 의료의 방향을 재차 강조했다. (사진=더오피니언타임즈)

이날 강연에서 리 교수가 제시한 글로벌 헬스케어의 미래는 AI가 의사의 판단을 대체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정밀한 바이오칩이 환자의 분자정보를 읽고 AI가 분석을 지원하되, 인간이 결과의 의미와 책임을 판단하는 의료다. 더불어 의료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기술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높이고,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환경의 건강까지 함께 살피는 체계다.

이를 구현할 인재는 AI를 가장 잘 사용하는 사람만으로는 부족하다. 과학적 근거를 의심하고, 다른 분야와 협력하며, 기술의 혜택을 받을 사람의 삶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리 교수는 강연 마지막에 자신이 그리고 있는 AI 의료의 방향을 재차 강조했다.

“기술은 차갑고 아주 정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치유는 따뜻하고 인간 중심이어야 합니다. AI와 바이오 기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에 인간의 건강을 더할 수 있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기술을 만드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기술로 사람을 치유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앞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인간 중심 AI 의료입니다.”

황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