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비아

이슈2026-10-27
청년이 판을 뒤집었다…브라질·세르비아 선거로 본 ‘풀뿌리·디지털 정치’

같은 날 치러진 브라질·세르비아 선거는 청년층의 거리 시위와 디지털 동원이 선거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음을 보여줬다.

지난 25일(현지시간) 브라질 대통령 결선투표에서는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대통령이 1차 투표 열세를 뒤집고 4선에 성공했다. 같은 날 세르비아 조기 총선에서는 학생 시위에서 출발한 ‘학생 명부’가 2012년부터 집권해 온 알렉산다르 부치치 전 대통령 진영을 꺾었다.

룰라 대통령은 결선에서 유효표의 51.79%(약 6426만 표)를 얻어 플라비우 보우소나루 상원의원(48.21%, 약 5983만 표)을 약 440만 표 차로 따돌렸다. 지난 4일 1차 투표에서는 보우소나루 후보에게 45.16% 대 47.03%, 약 220만 표 차로 뒤졌으나 3주 만에 승부를 뒤집었다. 투표율은 1차 78.92%에서 결선 80.8%로 올랐고, 유권자의 약 21%(약 3340만 명)에 이르던 기권율은 약 19%로 낮아졌다. 이 사이 룰라 대통령의 득표는 약 5390만 표에서 약 6426만 표로 1000만 표 넘게 늘었다.

역전의 동력으로는 청년층과 온라인 공간이 꼽힌다. 1차 투표 이튿날 밤 리우데자네이루 인근 니테로이에서 플루미넨시 연방대학교 학생들이 보우소나루 가문의 재집권에 반대하는 시위에 나섰고, 이틀 뒤 리우 도심을 시작으로 시위는 전국으로 번졌다. 온라인에서는 룰라 대통령의 측근인 앙드레 자노니스 하원의원이 1차 투표 이틀 뒤 개설한 왓츠앱 채널 ‘룰라의 군대’가 첫날 6만 명, 선거 당일까지 100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끌어모았다. 휴대전화조차 쓰지 않던 룰라 대통령도 셀카 영상을 찍어 유권자와 직접 소통에 나섰다.

구스타부 히베이루 브라질리언 리포트 편집장은 알자지라와의 인터뷰에서 “캠페인이 디지털 사고방식과 풀뿌리 활동으로 방향을 틀었다”고 평가했다. 저소득층 현금 지원 확대와 보우소나루 후보의 이른바 ‘당선인 행보’에 대한 반감도 승인으로 함께 거론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룰라 대통령은 승리 연설에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선 브라질 청년들의 너그러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세르비아의 변화 역시 거리에서 시작됐다. 2024년 11월 1일 노비사드 기차역 캐노피가 무너져 16명이 숨진 뒤 2년 가까이 이어진 청년 주도 시위가 선거 세력으로 탈바꿈했다. 학생들은 대학을 점거한 채 ‘플레넘’이라 불리는 직접민주주의식 총회로 의사를 결정했고, 이 방식은 각 지역 주민 총회로 확산됐다. 선거운동 기간에는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집권 세력의 텃밭인 농촌을 누비며 유권자를 만났다. 후보로는 학생 대신 의사·교수·농민·예술가 등 정치 신인을 내세웠고, 일부 기성 야당은 독자 후보를 내지 않고 학생 명부를 지지했다. 옐레나 바실리예비치 베오그라드대 연구원은 집권당이 고정 지지층을 갖춘 반면 학생들은 평소 투표하지 않던 유권자를 끌어내야 했다고 분석했다.

선거 승리를 축하하는 세르비아 시민들 (사진=AP/연합뉴스)

세르비아 공화국선거관리위원회(RIK)가 26일 오후 7시 5분(현지시간) 기준으로 공개한 개표 결과에 따르면 학생 명부는 52.73%(226만6939표)를 얻어 부치치 전 대통령의 세르비아진보당(SNS)이 주도한 ‘통합 세르비아'(39.15%, 168만3090표)를 약 58만 표 차로 앞섰다. 투표율은 68.78%로 1992년 유고슬라비아 해체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알자지라에 따르면 부치치 전 대통령은 “우리가 이번 선거에서 졌다는 것이 분명하다”며 패배를 인정했다. 그는 표본 조사를 근거로 전체 250석 가운데 학생 명부가 135~140석, 자당이 약 105석을 얻을 것으로 내다봤고, 여론조사기관 입소스와 세시드도 학생 명부의 의석을 약 140석으로 전망했다. 최종 결과와 의석 배분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 부치치 전 대통령은 연임 제한으로 대통령직을 더 이어갈 수 없게 되자 지난 9월 27일 사임하고 총리직에 도전했다.

두 선거는 기성 정당 바깥에서 시작된 청년 동원이 기권층을 투표장으로 불러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브라질에서는 SNS와 거리 시위가 맞물려 1차 투표 기권자를 끌어냈고, 세르비아에서는 시위 조직이 고스란히 선거 조직으로 전환됐다.

과제도 적지 않다. 보우소나루 후보는 크리스티아누 자닌 대법관이 교통 차질과 악천후를 이유로 투표 시간을 2시간 연장한 것을 문제 삼아 결과 무효화를 요구하며 승복을 거부하고 있다. 다만 연장은 양측 캠프가 모두 요청한 것이어서 법적 근거가 약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의회 구도도 녹록지 않다. 자유당(PL)과 우호 세력이 하원 513석 가운데 280석 이상, 상원 81석 가운데 최대 50석을 확보할 수 있어 여소야대 가능성이 거론된다.

세르비아에서는 선거감시단체 크르타(CRTA)가 감시한 투표소 500곳 가운데 약 3분의 1에서 유권자·선거 요원에 대한 압력 사례가 기록됐다. 새 의회는 최종 결과 발표 뒤 30일 안에, 새 정부는 그로부터 90일 안에 구성돼야 한다. 학생 명부는 부패·조직범죄 척결과 언론 자유, 제도 독립을 우선 과제로 내걸었다.

정도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