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 악화

이슈2026-10-19
교실에서 거리로, 거리에서 불길로…격화하는 프랑스 시위, 체포 2400명

프랑스 시위 격화가 지난 17일(현지시간) 전국적인 소요 사태로 이어졌다. 이날 전국 110여 곳에서 일제히 열린 시위에 수십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고, 일부 도시에서는 방화와 약탈이 잇따르면서 최근 수년 사이 가장 심각한 사태로 번졌다.

프랑스 당국은 이날 시위 참가자를 약 55만 명으로 집계했다. 프랑스 노동총동맹(CGT) 등 주최 측은 80만 명이 참여했다고 주장했다. 당국이 18일 처음 내놓은 체포자 수는 전국 최소 1800명이었다. 이 가운데 파리 수도권에서만 855명이 체포돼 557명이 구금됐다. 이후 프랑스 내무부 집계에서 체포자는 약 2400명으로 늘었고, 경찰과 헌병 부상자도 약 1000명에 달했다. 파리에서는 시위 도중 1명이 심장마비로 숨져 검찰이 정확한 사망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프랑스 시위 현장 (사진=EPA연합뉴스)

피해는 지방 도시로도 번졌다. 외신에 따르면 중부 도시 리모주에서는 19세기에 지어진 시청 건물이 불길에 휩싸여 지붕이 내려앉았다. 오트비엔 도지사 모리스 바라트는 고의적인 방화라고 밝혔다. 기욤 게랭 리모주 시장은 복구 재원이 지원되지 않으면 사퇴하겠다며 배수진을 쳤다. 마르세유에서는 복면을 쓴 무리가 경찰서를 훼손했고, 리옹에서는 관광안내소 내부에서 불이 났다. 파리와 마르세유, 리옹, 보르도 등지에서는 상점 수백 곳이 약탈당했다. 에마뉘엘 그레구아르 파리 시장은 피해 규모가 전례 없는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이번 사태의 출발점은 지난 9월 파리 수도권 크레테유의 고등학생 시위였다. 학생들은 교사 부족과 학급당 32~36명에 이르는 과밀학급, 낡은 학교 건물, 폭염 때 섭씨 40도까지 치솟는 교실 환경을 문제 삼았다. 프랑스 법무부에 따르면 10월 6일까지 학생 시위와 관련해 체포된 인원은 누적 5060명이며, 이 중 87%가 미성년자였다. 17일 시위에는 노조와 시민단체, 2018년 유류세 인상 반대 시위를 이끈 ‘노란 조끼’ 운동 참여자들까지 가세했다. 이에 따라 시위의 성격도 교육 여건 개선 요구에서 생활비 상승과 공공지출 삭감, 불평등에 대한 항의로 확대됐다.

학교 시위에서 충돌하는 학생 시위대와 경찰(사진=로이터연합뉴스)

시위의 배경에는 정부의 긴축 예산이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 정부는 2027년 예산안에 약 80조9000억 원(540억 유로) 규모의 재정 조치를 담았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를 올해 5.4%에서 내년 5.0%로 낮추겠다는 구상이다. 올해 국가부채 비율은 119.3%로 전망됐다. 정부는 재정 건전성을 되찾으려면 지출 억제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인 반면, 시위대는 생계 부담 완화와 교육·복지 투자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재정 악화의 근본 원인으로는 마크롱 정부의 감세 정책이 거론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6일 마크롱 대통령이 집권 이후 법인세를 인하하고 부유세를 폐지한 데 이어 연간 약 15조 원(100억 유로) 규모의 법인세 추가 감면까지 단행했다고 보도했다. WSJ는 여기에 노란 조끼 시위를 진정시키는 데 들어간 약 15조 원(100억 유로)의 지출과 코로나19 대유행,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따른 에너지 위기 대응 지출이 겹쳤다고 분석했다. 신문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2024년 한 만찬 자리에서 “우리의 문제는 과도한 지출이 아니라 줄어든 세수”라고 말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도 지난해 9월 마크롱 정부가 2018년 부유세를 폐지하고 법인세율을 33%에서 25%로 낮추는 등 주요 세금을 줄이는 동안 공공지출은 오히려 늘었다고 짚었다. 프랑스경제관측소(OFCE)의 그자비에 라고 소장은 FT에 2017년 이후 늘어난 프랑스 부채의 절반은 영구적 감세에서, 나머지 절반은 위기 대응 지원에서 비롯됐다고 진단했다. 프랑스의 재정적자는 3년째 GDP의 5%를 웃돌고 있으며,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2002년 이후 최고 수준인 5% 안팎까지 올랐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18일 저녁 대국민 연설에서 약탈과 폭력에 분노와 수치심을 느낀다며 어떤 이유로도 이를 정당화하거나 용서할 수 없다고 밝혔다. 다만 폭력 가담자와 정당한 요구를 내건 시위 참가자는 구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장과 중앙정부가 임명한 지방행정 책임자에게 특정 집회를 금지할 권한을 부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경찰의 정보 수집과 대비 태세에 허점이 없었는지 조사하라고도 지시했다. 아울러 학생과 교사, 국회의원, 노조, 기업인이 함께하는 협의의 장을 마련하라고 정부에 요청했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폭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정치권의 공방도 격해지고 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의 마린 르펜은 폭도들이 시위의 취지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극좌 성향의 장뤼크 멜랑숑은 파리 행진에 직접 참여해 르코르뉘 총리를 향해 “불장난을 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2027년 봄 대선을 앞두고 이번 사태는 프랑스 정국을 뒤흔드는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김도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