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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2026-11-05
[라이프 포커스] 재난가방, 무엇을 어떻게?…韓·英·日 지침으로 알아보는 ‘생존 키트’ 준비법
  • 영국·일본 정부 잇따라 비상물품 준비 강조…재난 대비의 출발점은 ‘최소 3일’
  • 식수·비상식량·상비약·보조배터리까지…집에 둘 물품과 들고 나갈 물품은 다르다
  • 영유아·고령자·반려동물에 맞춘 준비 필수…소비기한 점검과 가족 대피계획도 중요
재난 대비의 출발점은 비싼 장비보다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비상물품을 미리 점검하고 준비하는 일이다. (이미지=AI로 생성)

갑작스러운 정전으로 전기가 끊기고 수도까지 나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휴대전화 배터리는 떨어져 가고, 카드 결제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마저 이용할 수 없다면 일상은 순식간에 마비될 수 있다. 지진이나 태풍, 집중호우뿐 아니라 대규모 정전과 통신 장애 등 예기치 못한 상황에 대비하는 이른바 ‘재난 키트(Emergency Kit)’가 필요한 이유다. 시중에는 다양한 생존가방과 재난 대비용품 세트가 판매되고 있지만, 비싼 제품을 구매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 비상상황에 필요한 물품을 제대로 준비하는 일이다.

최근 해외 정부들도 가정의 비상물품 준비를 강조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10월 22일 가정에서 최소 3일을 대비하도록 안내하는 새로운 캠페인을 시작했고, 일본 정부는 지난 2일 대규모 재난에 대비해 식수와 식량 등을 미리 비축하도록 국민에게 긴급 요청했다. 아이러니 하게도 각국의 이러한 움직임은 국내에 전쟁 우려에 대한 불안감을 불러 일으키는 해프닝도 있었다.

다만 국내에서도 행정안전부는 생존배낭 구성과 대피요령을 안내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비상물품은 무엇이고, 얼마나 준비해야 할지 알아보는 것은 어떨까. 국내외 정부와 전문기관의 지침을 토대로 실제 활용할 수 있는 재난 키트 준비법을 살펴봤다.

재난가방이 화제인 이유…영국·일본 정부가 강조한 ‘3일의 준비’

정전·단수·통신 장애 같은 일상 속 비상상황은 재난 키트가 왜 필요한지를 가장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이미지=AI로 생성)

영국 정부는 지난 10월 22일 ‘비 레디(Be Ready)’ 캠페인을 공개했다. 폭풍이나 산불 등으로 전기와 수도, 통신 등 일상적인 서비스가 중단될 때 가정에서 스스로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목적이다. 영국 정부는 각 가정에 최소 3일분의 생수와 장기간 보관할 수 있는 식품을 준비하도록 권고하면서 손전등, 휴대용 라디오, 보조배터리, 구급용품 등도 함께 점검하도록 했다.

눈여겨볼 부분은 준비 방식이다. 영국 정부는 비상물품을 한꺼번에 구매할 필요가 없다고 안내한다. 집에 이미 있는 물건부터 확인하고 평소 장을 볼 때 필요한 품목을 한두 개씩 추가하는 방식으로 준비하라는 것이다. 특별한 장비를 갖추기보다 일상생활 속에서 조금씩 대비하는 것이 핵심이다.

일본에서는 지난 2일 출범한 방재청이 국민을 대상으로 ‘사전 방재 철저를 위한 긴급 요청’을 발표했다. 일본 정부는 대규모 지진이나 화산 분화 등으로 행정의 지원 역량이 제한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식수와 식량, 휴대용 화장실 등을 최소 3일, 가능하면 1주일분 비축할 것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가구 고정, 대피장소와 경로 확인, 비상 반출품 준비, 방재훈련 참여 등을 당부했다.

두 나라의 공통된 메시지는 재난 직후 외부 지원이 도착하기 전까지 필요한 물품을 가정에서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정부가 재난 대비를 강조한다고 해서 특정 재난이 임박했다는 의미는 아니다. 평소 준비를 통해 피해를 줄이자는 예방 차원의 권고다.

우리나라 행정안전부도 ‘국민안전24’에서 생존배낭 준비법을 안내하고 있다. 비상사태 대비 행동요령에 따르면 생존배낭은 대피소 등에서 생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활용품으로, 평소 2~3일분의 식수와 식량, 생필품, 상비약, 라디오, 손전등 등을 준비하도록 권고한다. 한 사람씩 들고 이동할 수 있도록 개인별로 구성하는 것이 원칙이다.

특히 실제 재난 대비에서는 집에서 구조나 복구를 기다리는 상황과 집을 떠나 대피해야 하는 상황을 구분해야 한다. 가정에 보관하는 비축품과 대피 시 가져가는 생존배낭을 따로 준비해야 하는 이유다.

식수부터 보조배터리까지…생존 키트에 반드시 챙겨야 할 물품은?

재난 키트는 식수와 식량, 구급용품, 조명·통신 수단, 위생용품 등 생존에 필요한 항목을 중심으로 구성해야 한다. (이미지=AI로 생성)

재난 키트를 준비할 때 가장 먼저 고려할 물품은 식수다. 영국 정부의 비상 대비 체크리스트는 1인당 하루 3리터의 마실 물을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으며, 취사와 세면 등 다른 용도로 사용할 물은 추가로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일본 정부 역시 식사에 사용하는 물까지 포함해 1인당 하루 3리터를 기준으로 안내하고 있다.

이를 4인 가족에게 적용하면 하루 12리터, 3일 동안 36리터가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2리터 생수병으로 환산하면 18병이다. 다만 이 수치는 가정 비축량을 계산하기 위한 예시다. 36리터의 물을 모두 가방에 담아 이동하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식량은 조리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제품을 중심으로 준비하는 것이 좋다. 에너지바와 견과류, 비스킷, 바로 먹을 수 있는 통조림 등이 대표적이다. 통조림은 수동 캔따개가 필요한 제품인지 확인해야 하며, 즉석밥처럼 가열이 필요한 식품만 준비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정전이나 가스 공급 중단으로 조리기구를 사용하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명과 통신수단도 중요하다. 영국 정부는 손전등과 여분 건전지, 건전지 또는 수동 충전식 라디오, 충전된 보조배터리 등을 권장한다. 재난 상황에서 통신망이나 전력 공급이 불안정해질 수 있는 만큼 스마트폰 이외에 정보를 확인할 수단을 갖춰두는 것이다.

의료용품으로는 반창고와 붕대, 소독제 등 기본 구급용품 외에도 평소 복용하는 처방약과 개인 의료용품을 준비해야 한다. 여기에 물티슈와 손 소독제, 화장지, 생리용품 등 위생용품을 추가한다. 단수나 화장실 사용 제한 가능성까지 고려하면 비닐봉투와 휴대용 화장실도 유용하다.

현금과 중요서류 역시 빠뜨리기 쉬운 품목이다. 영국 정부는 전자결제나 현금자동입출금기가 작동하지 않는 상황에 대비해 현금을 준비하고, 신분증과 보험 관련 서류의 사본, 중요한 연락처를 종이로 보관하도록 안내한다.

비상물품을 준비했다고 해서 모든 물품을 가방 하나에 넣을 필요는 없다. 물이나 통조림처럼 무거운 물품은 집에 별도로 비축하고, 대피용 가방에는 이동 중 필요한 물품을 우선 배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가방은 가족 구성원마다 하나씩 준비하되 실제로 메고 이동할 수 있는 무게인지 확인해야 한다. 특히 어린이나 고령자는 이동 능력을 고려해 가방을 구성하고, 가족 내에서 물품을 분담하는 것이 좋다.

재난가방을 새로 마련하려는 경우에도 구성품을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다. 손전등이나 구급용품처럼 이미 집에 있는 물건을 중복 구매할 필요는 없다. 많은 품목이 들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실용적인 것도 아니다. 실제 사용할 수 있는 물품인지, 소비기한과 배터리 상태를 확인할 수 있는지, 개인에게 필요한 품목이 빠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린이·고령자·반려동물까지…가족별 준비와 관리가 중요하다

재난 대비는 기본 물품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영유아, 고령자, 만성질환자, 반려동물에 맞춘 준비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이미지=AI로 생성)

재난 키트는 모든 가정에 동일하게 적용하기 어렵다. 가족 구성과 건강 상태, 생활환경에 따라 필요한 물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영유아가 있는 가정이라면 기저귀와 물티슈, 분유나 이유식, 수유용품 등을 추가해야 한다. 특히 영국 정부는 단수나 정전으로 물을 끓이거나 수유용품을 소독하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바로 먹일 수 있는 액상 분유도 고려하도록 안내한다.

고령자와 만성질환자가 있는 가정에서는 복용약 확보가 중요하다. 혈압약이나 당뇨약 등 정기적으로 사용하는 약이 있다면 의료진·약사와 상의해 적절한 예비 분량을 준비하고, 약 이름과 복용량, 복용시간을 종이에 기록해 두는 것이 좋다. 의료기기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정전 시 사용할 수 있는 예비 전원과 필요한 소모품도 확인해야 한다.

반려동물을 기르는 가정도 별도의 준비가 필요하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는 반려동물 재난 대비 키트에 사료와 식수, 필요한 약, 목줄, 이동장, 예방접종 기록, 식별정보 등을 포함하도록 안내한다. CDC의 상세 지침은 사료와 물, 필요한 약의 2주분 확보를 권고하는데, 이는 장기간 대비를 위한 기준으로 대피 시 모두 직접 들고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반려동물은 재난 상황에서 낯선 환경과 큰 소음으로 불안해하거나 보호자와 떨어질 위험도 있다. 평소 이동장에 익숙해지도록 하고, 동물등록정보와 연락처를 최신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피소마다 반려동물 수용 여부와 운영 방식이 다를 수 있으므로 사전에 지자체 등을 통해 확인해야 한다.

물품을 준비한 다음에는 관리가 뒤따라야 한다. 영국 정부는 6개월마다 비상용품의 소비기한을 점검하고 가족의 필요가 달라졌는지 확인하도록 권고한다. 비상식량을 별도로 쌓아두기만 하기보다는 평소 먹는 식품을 여유 있게 구매하고, 먼저 구입한 제품부터 소비한 뒤 다시 채워 넣는 방식도 활용할 수 있다.

여기에 가족 비상연락망과 대피계획을 준비하면 재난 대비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다. 가족이 서로 다른 장소에 있을 때 어디서 만날지, 통화가 어려운 상황에서는 어떻게 연락할지 미리 정해두는 것이다. 행정안전부 역시 통신 두절에 대비해 가족 만남의 장소를 정하고 비상연락카드를 생존배낭에 넣도록 안내한다.

스마트폰을 이용한 재난정보 확인 방법도 미리 알아둘 필요가 있다. 행정안전부가 지난 6월 15일 개편한 ‘안전디딤돌’ 앱은 현재 위치를 바탕으로 해당 지역의 재난문자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대피소 등 재난안전시설의 위치와 이동 경로도 지도에서 안내한다. 국민안전24 홈페이지에서도 재난별 국민행동요령과 대피시설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재난 유형에 따라 안전한 대피장소는 달라질 수 있다. 지진이나 지진해일, 홍수, 화재에 동일한 대피 방법을 적용해서는 안 된다. 특히 침수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지하 대피시설로 이동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으므로 반드시 해당 재난에 맞는 공식 대피 안내를 따라야 한다.

비상물품을 갖추는 데 반드시 큰돈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집에 있는 손전등과 구급함을 확인하고, 생수와 비상식량을 조금씩 추가하며, 가족의 대피계획을 공유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잘 갖춰진 재난 키트의 기준은 가격이나 물품의 개수가 아니라, 실제 위기 상황에서 가족에게 필요한 물건을 제때 사용할 수 있느냐에 있다.

황주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