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장] “AI보다 인간이 잘할 수 있는 것은?”…최재천 교수가 진화에서 찾은 답
- 유선전화기가 낯선 아이부터 AI 시대의 고민까지…달라진 세상을 바라보는 생물학자의 시선
- 힘과 두뇌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인류의 생존…분업과 협업, 공생의 의미
- 다양성을 말하면서 다른 의견은 배제하는 사회…최재천 교수가 던진 질문

회의가 시작되면 으레 나오는 말이 있다. 자유롭게 의견을 내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막상 누군가 다른 생각을 꺼내면 분위기가 달라지곤 한다. 고개를 갸웃하거나 불편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나타난다. 때로는 다수의 의견에 맞춰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현명한 선택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다양한 생각이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데는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그런데 자연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수많은 생명은 저마다 다른 모습과 방식으로 환경에 적응해 왔다. 어떤 생명은 서로 경쟁하고, 어떤 생명은 협력하며, 또 다른 생명은 자신과 전혀 다른 존재에 의지해 살아간다. 그렇다면 자연의 일부인 인간은 왜 자신과 다른 존재를 불편해할까.
평생 동물과 자연을 연구해 온 최재천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는 이러한 질문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지난 14일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열린 ‘SURF 2026 INCHEON(인천스타트업위크)’ 첫날 오후 ‘비즈니스 혁신 트렌드 세미나’에서다. ‘다양성이 혁신을 만든다: 지속 가능한 비즈니스의 조건’을 주제로 무대에 오른 그는 생물학자의 시선으로 인간이 살아온 방식과 앞으로 살아갈 세상을 들여다봤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뜻밖에도 스마트폰이었다. 최 교수는 뉴욕의 미술관에서 만난 어린아이와 오래된 전화기의 이야기를 꺼내더니 스티브 잡스와 인공지능(AI), 네안데르탈인과 호모 사피엔스, 인간의 뱃속에 사는 미생물까지 종횡무진 넘나들었다. 자칫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진화와 공생의 원리를 일상의 익숙한 장면과 유머로 풀어낸 것이다.
서로 무관해 보이는 이야기에는 공통된 질문이 담겨 있었다. 기술이 인간의 능력을 빠르게 따라잡는 시대, 우리는 무엇을 잘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최 교수는 그 답을 인간이 오랜 세월 발전시켜 온 협업과 지성, 그리고 자연이 보여주는 다양성에서 찾고 있었다.
“전화로 전화를 해요?”…유선전화기가 낯선 아이와 AI 시대의 인간
최 교수는 몇 년 전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경험한 일을 소개했다. 전시장에서 오래된 유선전화기를 발견하고 의아한 마음에 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옆에 있던 다섯 살쯤 된 아이가 아버지에게 그것이 무엇인지 물었다는 것이다. 아버지에게는 어린 시절 사용하던 익숙한 물건이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폰을 접한 아이에게는 처음 보는 낯선 기계였다.
“아빠가 ‘우리는 지금 전화할 때 아이폰을 쓰잖아. 근데 아빠가 어렸을 때는 텔레폰을 썼단다’ 그러는 거예요. 그러니까 아이가 ‘이걸로 전화를 해요?’ 이렇게 얘기를 해요. 그걸 우리말로 직역하면 ‘전화로 전화를 해요?’ 이렇게 얘기한 거잖아요. 너무 말이 안 되는데, 저는 그때 이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을 되게 상징적으로 얘기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불과 한 세대 사이에 일상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진 셈이다. 부모에게는 당연했던 일이 자녀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과거가 됐다. 최 교수는 이러한 변화를 설명하면서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기술과 인문학의 만남을 강조했던 장면을 떠올렸다. 잡스는 2010년 아이패드 발표 당시 기술과 인문학의 교차점을 애플의 제품 철학으로 제시했다.
최 교수는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과학기술로 만든 기계에 인문학이 들어 있다는 설명이 납득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아내의 아이폰을 뜯어보려고 했다는 이야기도 꺼냈다.
“저는 들으면서 ‘야, 내가 머리털 나고 들어본 구라 중에 가장 강력하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 도대체 인문학을 어디다 넣어놨다는 거야. 이건 분명히 과학기술로 만들어낸 제품이잖아요. 근데 그걸 만들어낸 작자가 이 안에 인문학이 들어 있다고 그러니까 제가 봐야 될 거 아니에요. 세월이 흘러가면서 ‘아, 저 양반이 한 얘기가 무슨 뜻이었나’ 하는 걸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뒤늦게 이해한 것은 기술이 인간의 생활과 경험을 바꾸는 힘이었다. 작은 스마트폰 하나로 사람들은 먼 나라의 풍경을 보고, 우주 탐사 영상과 정보를 접하며, 세계 곳곳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손바닥만 한 기계 안에 이전 세대가 상상하기 어려웠던 세계가 펼쳐진 것이다.
그런 세상에 이제 AI가 등장했다. 최 교수는 AI를 대하는 자신의 태도가 달라졌다고 털어놨다. 과거에는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인간과 사회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걱정하는 편이었지만, AI를 접한 뒤에는 스스로 ‘변심했다’고 표현할 만큼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저는 AI만큼은 그동안 우리가 접해오던 그 많은 신기술과 근본적으로 다르게 대응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거는 우물쭈물할 겨를이 없는 것 같아요. AI를 활용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 AI를 장착한 국가와 그렇지 못한 국가는 앞으로 격차가 어마어마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AI 기술만큼은 일단 올라타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저는 어쩔 수 없이 하게 됐습니다. 물론 달리면서 걱정할 건 걱정하면서 잘 견뎌내야 되겠지만 예전과는 좀 다른 국면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AI에 모든 판단을 맡기라는 의미는 아니었다. 최 교수는 소설가 황석영이 방송에서 AI를 활용하는 태도에 관해 이야기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스스로 무엇을 하려는지 분명히 알고 주체적으로 AI를 활용한다면, AI는 인간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일을 돕는 조수가 될 수 있다는 취지였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을 사용하는 주체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다. AI가 더 많은 지식과 정보를 제공할수록 무엇을 질문하고, 어떤 답을 선택하며, 그 결과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는 인간이 고민해야 할 영역으로 남는다.
“네안데르탈인이 힘도 세고 뇌도 컸는데”…인간은 어떻게 함께 살아남았을까
그렇다면 인간에게는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을까. 최 교수는 답을 찾기 위해 시계를 수만 년 전으로 돌렸다.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오랜 세월 지구에서 살아갔던 네안데르탈인의 이야기다.
네안데르탈인은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비교해 강인한 체격을 지녔고, 평균적인 뇌 용적도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약 4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의 독립적인 집단은 사라졌고,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인류 종은 호모 사피엔스뿐이다. 두 인류는 한때 같은 시기에 살았으며, 서로 교류하고 후손을 남긴 흔적도 유전체에 남아 있다. 최 교수는 이 대목에서 흥미로운 질문을 던졌다.
“네안데르탈인이 확실히 우리 조상님들보다 체격이 훨씬 좋았어요. 그러니까 힘이 훨씬 세다는 겁니다. 근데 더 놀라운 건 두뇌의 크기를 비교하니까 두뇌가 더 커요. 물론 머리통 큰 사람이 무조건 머리 좋은 건 아니잖아요. … 근데 왜 우리한테 밀렸을까? 이게 굉장히 궁금한 질문 중 하나입니다.”
네안데르탈인이 사라진 원인은 여전히 학계에서 논의되고 있다. 인구 규모와 환경 변화, 다른 인류와의 경쟁 등 여러 요인이 제시된다. 최 교수는 그 가운데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고 협력하는 능력에 주목했다.

그가 소개한 것은 영국 옥스퍼드대학교 로빈 던바 교수의 연구에서 비롯된 ‘던바의 수(Dunbar’s number)’다. 인간이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규모를 약 150명으로 보는 가설이다.
최 교수는 호모 사피엔스가 자신이 직접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과 협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다는 점에 의미를 뒀다. 강연에서는 낯선 침팬지가 다른 무리에 들어가는 상황을 카페에 비유하며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인간은 수많은 낯선 사람 사이에서도 일상적으로 생활하며, 서로 다른 역할을 나눠 복잡한 사회를 유지한다는 설명이다. 최 교수는 다시 이를 ‘벼농사’를 예로 들며 설명했다.
“우리는 벼농사 어떻게 지어야 되는지 모르고 살잖아요. 벼농사 지어주는 분이 잘 지어서 쌀을 가게에 갖다 놨기 때문에 우리는 그냥 가게에 가서 쌀 사다가 물 붓고 끓여주면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는 거잖아요. 이게 달라진 걸 겁니다. 다른 모든 영장류는 함께 모든 일을 다 같이 해야 되는데, 우리(호모 사피엔스)는 기가 막히게 세밀하게 분업을 이루면서 굳이 내 하루 일과에 관여되는 모든 정보를 머릿속에 다 담아둘 필요가 없는 동물이 됐다는 겁니다.”

협력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벌어지는 일도 아니다. 최 교수는 인간의 몸속에 사는 장내 미생물을 또 다른 예로 들었다. 우리 몸에는 수많은 미생물이 살아가며 음식물의 소화와 영양소의 이용, 면역 기능 등에 관여한다. 인간은 이들과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다. 우리가 스스로를 하나의 독립된 존재로 생각할지라도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생명들과 복잡한 공생 관계를 맺고 있다는 의미다.
최 교수는 이러한 관계를 몸 안에서 이뤄지는 협업에 비유했다. 여기에 다른 사람의 지식과 경험을 활용하고 서로 역할을 나누는 사회적 관계를 더하면, 인간은 몸 안팎에서 끊임없이 다른 존재에 의지하며 살아가는 셈이다.
이야기는 다시 AI 시대로 이어졌다. 최 교수는 자신이 사용해 본 AI와 인간을 비교하면서 호기심과 집요함, 직관을 주목해야 할 특성으로 꼽았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새로운 질문을 던지고, 불가능해 보여도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때로는 평균적인 판단에서 벗어나는 인간의 모습을 예로 들었다.
“우리 인간은 AI가 주는 정답을 손에 쥐고도 의심하고 고민하잖아요. 나는 이길 방법을 뻔히 알고 있어요. 그런데도 내가 이대로 하면 저 사람들은 어떡하지? 내가 이렇게 해서 이겨버리면 내 가족은 나를 또 뭐라고 생각할까? 내 친구들이 나를 뭐라고 그럴까?”
그는 이를 ‘지능’과 구별되는 ‘지성’의 문제로 바라봤다. 계산을 통해 효율적인 답을 찾는 능력도 중요하지만, 그 답이 자신과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고민하는 태도 역시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 교수는 AI가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이러한 판단을 할 수 있을지에는 회의적인 견해를 밝혔다. 결국 인간의 특별함을 설명하는 단서로 그가 강조한 것은 다른 존재와 관계를 맺고 협력하는 능력, 그리고 자신의 선택이 타인에게 미치는 영향을 돌아보는 태도였다.
“다양한 의견이 필요하다면서 왜 째려볼까”…다름을 품는 사회의 조건
강연의 마지막은 최 교수가 평생 연구해 온 자연의 다양성으로 돌아왔다. 그는 자연계에서 생명체가 끊임없이 변화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관찰해 왔다고 설명했다.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이러한 생물의 변화와 적응을 이해하는 중요한 토대다. 생명체는 저마다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진화해 왔다.
그런데 최 교수의 눈에 비친 인간 사회는 자연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다양한 생각이 창의성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실제 생활에서는 질서와 통일성을 더 편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근데 제가 그동안 관찰한 호모 사피엔스라는 이 동물은요, 다양성을 싫어하더라고요. 질서 정연해야 되고요, 일사불란해야 되고, 다양하면 정신 사납다고 다 싫어해요. 회의 왜 하세요, 매일? 다양한 목소리가 필요하다면서요, 다양한 목소리가 있어야 건강한 사회라면서요. 그런데 회의할 때 누가 삐딱한 소리 하면 뭐해요, 다 같이 째려봐요.”
익숙한 장면이다. 학교에서는 창의적인 생각을 강조하지만 정답과 다른 의견을 내는 학생은 눈에 띄기 쉽다. 직장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요구하면서 기존 방식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을 불편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최 교수는 이러한 태도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로 다른 생각이 충돌하는 과정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하나의 목소리만 남긴다면, 결국 비슷한 판단과 익숙한 방식만 반복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양한 사람을 받아들이면서 공동체의 혁신을 지속하려면 어떤 역할이 필요한지 묻는 현장의 질문에 최 교수는 과거 기관을 운영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그냥 효율만 자꾸 생각하다 보면 이른바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드러나 보이는 그 사람들만 자꾸 중용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 한동안은 결과가 나오는 것 같은데 그 다음에는 다양성이 없기 때문에 뻔한 일이 계속 반복되더라고요. 그래서 만일 긴 숨을 가지고 정말 탁월한 결과를 내시겠다, 그러면… 쉽지는 않겠지만 하셔야 될 그 방향은 다양한 사람을 기용하는, 그리고 그들을 믿어주는 거. 이게 굉장히 중요한 일일 것 같아요.”
당장 눈에 띄는 성과만 따지면 자신과 생각이 비슷하고 익숙한 방식으로 일하는 사람을 선택하기 쉽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서로 다른 경험과 관점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할 때 기존에는 떠올리지 못했던 방법을 발견할 가능성이 커진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최 교수는 미국 하버드대학교에서 공부하던 시절 기숙사 사감으로 일했던 경험을 소개했다.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학생들이 한 방에서 생활하며 갈등하고 부딪히는 모습을 가까이서 지켜봤다는 것이다. 처음부터 마음이 잘 맞는 사람끼리 지내는 것과는 달랐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학생들이 다른 사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워갔다고 회상했다.

“하버드 대학은 기숙사 한 방에 똑같은 아이들을 같이 집어넣지는 않습니다. 꼭 뒤섞어 가지고 때려 넣습니다. 그놈들끼리 많이 싸워요, 지지고 볶고 난리가 나요. 그런데 한 3년 그러고 나면 졸업할 때 그 아이들이 세상의 많은 다양한 걸 품을 수 있는 사람들이 되더라고요.”
최 교수는 이러한 경험을 통해 서로 다른 사람을 함께 어울리게 만드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의미 있는 노력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사람을 모으는 것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갈등을 조정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며, 상대를 믿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과정이 뒤따라야 한다.
이는 기업이나 학교 같은 조직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가족 안에서도 세대마다 생각이 다르고, 친구와 이웃 사이에서도 가치관이 충돌한다. 서로 다른 의견을 듣는 일은 때로 불편하고 피곤하지만, 그 차이를 받아들이는 경험이 우리의 생각과 관계를 넓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기술이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서로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선택은 결국 사람들에게 남는다. 누군가 나와 다른 의견을 내놓을 때 우리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어쩌면 함께 살아가는 능력은 거창한 변화보다 그 순간 상대의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