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를 달구던 고온다습한 북태평양고기압이 마침내 세력을 거두면서 기온과 습도가 동시에 떨어지는 본격적인 계절 변화가 시작됐다. 폭염을 유발하던 뜨거운 남풍 대신 차고 건조한 바람이 불어 들면서 전국이 가을 영역에 진입하는 양상이다. 전남과 경남, 제주 해안 등에 남아있던 폭염주의보도 기온 하강과 함께 순차적으로 해제 조치됐다.
기상청에 따르면 한반도 북쪽에는 강한 고기압이 둥지를 틀고, 남쪽에는 제24호 태풍 ‘크로반’을 비롯한 저기압이 위치하는 ‘북고남저’ 형태의 기압배치가 형성됐다. 고기압의 시계 방향 흐름과 저기압의 반시계 방향 흐름이 맞아떨어지면서 우리나라에는 상대적으로 서늘한 동풍이 강하게 유입되고 있다. 북쪽 고기압이 철벽 수비를 치르듯 세력을 확충함에 따라 태풍 크로반은 한반도로 올라오지 못하고 남동쪽으로 회군하는 경로를 밟게 됐다.
이번 기압계 재편으로 당분간 전국 대부분 지역에서 맑고 선선한 날씨가 펼쳐질 전망이다. 다만 동풍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강원 영동과 동해안, 제주 지역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구름대의 유입으로 흐리거나 일시적으로 비가 내리는 곳이 있겠다. 기온 역시 평년 수준을 되찾아 주말을 거치며 아침 최저기온은 10도대 중후반, 낮 최고기온은 30도 아래로 차츰 낮아진다.
하늘이 맑아 지표면 열이 밤사이 빠르게 방출되는 복사냉각 현상이 활발해짐에 따라 낮과 밤의 기온 차는 한층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습도가 낮아진 상태에서 일교차가 커지는 만큼 건강 관리에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아울러 북쪽 고기압과 남쪽 태풍 사이의 기압 차이가 벌어지면서 제주와 전국 해안가를 중심으로 순간풍속 시속 55km 안팎의 강한 바람이 불어 대형 시설물 관리에도 대비가 필요하다.
해상 안전 사고 위험도 한층 높아졌다. 동해안과 경남 해안, 제주 해안에는 당분간 강한 너울성 파도가 밀려와 갯바위나 방파제를 넘어 위험 지역을 덮칠 가능성이 크다. 해안가 방문객들은 가급적 방파제 접근을 자제하고 해안 안전 수칙을 준수해야 한다.
자전거는 가격이나 속도보다 주로 달릴 노면과 거리, 원하는 주행 자세를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이미지=AI로 생성)
아직 여름 더위가 한창이지만, 곧 아침저녁으로 바람이 선선해지는 가을이 온다. 가을은 자전거를 시작하기 좋은 계절이다. 걷기보다 멀리 갈 수 있고 달리기보다 관절에 가해지는 충격이 적어 출퇴근이나 체중 관리, 주말 운동을 위해 자전거를 찾는 사람도 많아지고 있다.
문제는 막상 자전거를 고르려고 할 때부터 시작된다. 로드바이크와 하이브리드, 산악자전거, 그래블바이크, 미니벨로까지 이름도 생김새도 제각각이다. 가격 차이는 크지만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초보자에게 어떤 자전거가 맞는지는 좀처럼 알기 어렵다.
자전거를 고를 때 가장 먼저 따져야 할 것은 속도가 아니라 ‘어디에서, 얼마나, 어떤 자세로 달릴 것인가’다. 포장된 자전거도로를 주로 달릴 사람과 산길을 달릴 사람에게 필요한 자전거가 같을 수 없다. 프레임 크기와 안장·핸들 위치까지 몸에 맞지 않으면 무릎과 허리, 손목 통증 때문에 몇 번 타보지도 못하고 자전거를 세워두게 될 수 있다.
내가 달릴 길과 몸에 맞는 자전거 종류부터 신체에 맞춘 조정법, 첫 주행 전 점검과 올가을 도전할 만한 초보자 코스까지 차근차근 살펴본다.
로드가 무조건 정답은 아니다…‘달릴 길’을 정하면 종류가 보인다
로드·하이브리드·그래블·산악자전거는 타이어와 핸들바, 서스펜션 구조가 달라 각각 어울리는 노면과 주행 방식도 다르다. (이미지=AI로 생성)
자전거의 종류를 이해하려면 먼저 매장에서 사용하는 제품 분류와 자전거 경기 종목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국제사이클연맹(UCI)은 도로, 트랙, 산악자전거, BMX 레이싱·프리스타일, 사이클로크로스, 그래블 등 자전거 스포츠를 여러 종목으로 나눈다. 반면 하이브리드와 미니벨로, 접이식 자전거는 경기 종목이 아니라 주행 목적과 형태에 따른 제품 분류다.
초보자가 가장 쉽게 접하는 것은 하이브리드 자전거다. 산악자전거처럼 일자형 핸들바를 사용하지만 타이어는 산악자전거보다 좁고, 상체를 로드바이크만큼 숙이지 않아도 된다. 포장된 하천 자전거도로와 도심 출퇴근, 가벼운 주말 운동을 한 대로 해결하기 좋다. 아직 자신의 라이딩 취향을 모르는 입문자라면 가장 무난한 선택지다.
로드바이크는 가벼운 차체와 아래로 굽은 드롭바, 상대적으로 좁은 타이어를 사용한다. 포장도로에서 빠르게 달리고 장거리를 이동하는 데 유리하지만 상체를 숙이는 자세와 민감한 조향에 적응해야 한다. 초보자가 로드바이크를 고른다면 경기용처럼 자세가 공격적인 모델보다 핸들 위치가 비교적 높고 안정적인 ‘엔듀런스형’을 먼저 살펴보는 편이 좋다.
산악자전거(MTB)는 폭이 넓고 접지력이 높은 타이어, 낮은 기어, 충격을 흡수하는 서스펜션을 갖춘다. 임도나 흙길, 돌과 나무뿌리가 있는 산악 코스를 달릴 때 필요하다. 산악자전거 스포츠는 장거리와 오르막을 겨루는 크로스컨트리부터 거친 내리막을 달리는 다운힐까지 다시 나뉜다. 다만 포장된 평지에서만 탈 생각이라면 넓은 타이어와 서스펜션이 무게와 주행 저항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래블바이크는 로드바이크와 비슷해 보이지만 타이어가 더 넓고 낮은 기어를 갖춘 경우가 많다. 포장도로와 단단한 흙길을 함께 달리는 그래블 라이딩이나 짐을 싣고 여행하는 바이크패킹에 어울린다. 로드바이크의 속도감은 원하지만 노면 상태에 지나치게 신경 쓰고 싶지 않은 사람에게 선택지가 될 수 있다.
미니벨로와 접이식 자전거는 작은 바퀴와 보관 편의성이 강점이다. 승용차나 대중교통에 싣거나 집 안에 보관하기 쉽지만, 작은 바퀴는 노면 충격에 상대적으로 민감하다. 전기자전거는 모터가 페달링을 보조해 언덕이나 장거리 이동 부담을 낮춘다. 다만 일반 자전거보다 무거워 배터리가 소진됐을 때 이동과 계단 운반이 어렵고, 배터리 교체 비용과 정비망도 확인해야 한다.
주행 목적
우선 살펴볼 자전거
하천 자전거도로·출퇴근·생활 운동
하이브리드
포장도로 장거리·속도 중심 운동
엔듀런스형 로드바이크
임도·숲길·산악 코스
산악자전거
포장도로와 비포장도로 혼합
그래블바이크
자전거 여행·짐 운반
투어링 또는 그래블바이크
차량·대중교통 이동과 실내 보관
미니벨로·접이식 자전거
언덕 부담 완화·체력 차가 있는 동행
전기자전거
차종을 정했다면 프레임 재질이나 변속기 등급보다 크기부터 확인해야 한다. 같은 ‘M 사이즈’나 54㎝ 프레임도 제조사와 모델에 따라 실제 길이와 자세가 다르다. 키와 인심 길이를 제조사 권장표에 대입한 뒤 반드시 직접 올라타봐야 한다. 자전거 탑튜브 위에 두 발로 섰을 때 가랑이와 프레임 사이에 몇 ㎝의 여유가 있어야 하고, 비포장용 자전거라면 더 넉넉한 공간이 필요하다.
안장에 앉아 핸들을 잡았을 때 어깨가 귀 쪽으로 올라가거나 팔꿈치가 완전히 펴진다면 핸들까지의 거리가 멀 수 있다. 손을 옮기지 않고 브레이크 레버를 당길 수 있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가능하면 매장에서 직진만 하지 말고 출발과 정지, 저속 회전까지 포함해 10분 이상 시험 주행하는 것이 좋다.
체격이 크거나 짐을 싣고 탈 계획이라면 제조사가 제시한 허용 총중량도 확인해야 한다. 이 수치는 탑승자뿐 아니라 자전거와 물통, 가방 등 짐의 무게까지 포함하는 경우가 있으므로 제품별 기준을 살펴봐야 한다. 자전거 본체가 가볍다는 이유만으로 선택하기보다 휠과 프레임이 예상 하중을 견딜 수 있는지가 우선이다.
무릎이 아프다면 체력 탓이 아닐 수도…몸과 닿는 세 지점을 맞춰라
안장 높이와 페달 위 발의 위치, 핸들바까지의 거리를 몸에 맞게 조절하면 무릎·허리·손목에 집중되는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이미지=AI로 생성)
자전거와 몸이 만나는 지점은 엉덩이가 닿는 안장, 발이 놓이는 페달, 손이 잡는 핸들바다. 이 세 지점의 위치가 맞지 않으면 페달을 밟는 동작이 부자연스러워지고 특정 관절이나 신체 부위에 부담이 집중된다. 조정은 프레임 크기를 먼저 확인한 뒤 안장 높이, 안장의 앞뒤와 각도, 발 위치, 핸들바와 브레이크 레버 순서로 진행한다.
안장 높이를 맞추는 가장 간단한 방법은 ‘뒤꿈치 방식’이다. 벽이나 동행인의 도움을 받아 자전거에 앉은 뒤 크랭크와 페달을 가장 아래인 6시 방향에 둔다. 신발을 신은 상태에서 뒤꿈치를 페달 위에 올렸을 때 다리가 거의 곧게 펴지도록 안장 높이를 조절한다. 이후 실제 주행처럼 발의 앞부분으로 페달을 밟으면 페달이 가장 아래에 왔을 때 무릎이 약 25~30도 굽혀진다.
안장이 지나치게 높으면 페달 아래쪽에 발을 대기 위해 골반이 좌우로 흔들리고 무릎 뒤쪽이나 허리에 부담이 생길 수 있다. 반대로 너무 낮으면 무릎이 깊게 접혀 앞쪽에 압박이 집중되고, 페달을 밟아도 다리 힘을 충분히 전달하기 어렵다. 다만 뒤꿈치 방식과 무릎 각도는 시작점을 찾는 간이 기준이다. 다리 길이와 유연성, 발목을 사용하는 습관이 다르기 때문에 실제 주행 후 조금씩 조정해야 한다.
안장의 앞뒤 위치는 크랭크를 3시와 9시 방향에 놓고 확인한다. 앞쪽 무릎이 페달 축과 대체로 자연스러운 관계에 놓이는 지점을 출발점으로 삼되, 무릎 위치 하나만 맞추려고 안장을 과도하게 움직여서는 안 된다. 안장의 위치가 바뀌면 핸들바까지의 거리와 상체에 실리는 하중도 함께 달라지기 때문이다.
안장 각도는 우선 수평에 가깝게 놓는다. 안장 앞부분을 지나치게 내리면 몸이 앞으로 미끄러져 팔과 손목에 체중이 몰릴 수 있다. 반대로 앞부분이 높으면 회음부 압박과 저림이 커질 수 있다. 엉덩이가 아프다고 두껍고 푹신한 안장부터 찾는 것도 정답은 아니다. 상체를 세우고 짧게 달릴 때는 넓고 부드러운 안장이 편할 수 있지만, 상체를 숙여 오래 달릴 때는 좌골을 안정적으로 받쳐주는 폭과 형태가 더 중요하다.
발은 앞꿈치나 뒤꿈치가 아니라 발바닥에서 가장 넓은 앞부분이 페달 축 위나 약간 앞쪽에 오도록 놓는다. 발끝으로만 밟으면 종아리와 발목에 불필요한 힘이 들어갈 수 있다. 처음에는 정차할 때 즉시 발을 뺄 수 있는 평페달이 안전하다. 신발을 페달에 고정하는 클릿 페달은 주행과 정지가 익숙해진 뒤 별도로 배우는 편이 좋다.
핸들바는 초보자가 자주 놓치는 부분이다. 하이브리드나 생활형 자전거는 핸들바가 안장과 비슷하거나 조금 높은 위치에서 시작하면 상체를 비교적 편하게 세울 수 있다. 핸들을 잡았을 때 팔꿈치는 완전히 펴지지 않고 살짝 굽어야 노면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 어깨는 힘을 빼고, 손목과 손등이 한쪽으로 과도하게 꺾이지 않도록 그립과 브레이크 레버의 각도를 맞춘다.
로드바이크는 드롭바 아래쪽보다 평소 가장 많이 잡는 브레이크 후드가 편한지 먼저 확인해야 한다. 손을 앞으로 뻗어야 겨우 브레이크에 닿거나 손가락에 지나치게 힘을 줘야 한다면 레버 간격을 조정할 필요가 있다. 스템 높이와 핸들바 고정 볼트는 체결 순서와 적정 토크가 안전에 영향을 주므로 작업에 익숙하지 않다면 자전거 판매점이나 전문 정비점에 맡기는 것이 좋다.
주행 중 나타나는 불편은 조정 상태를 알려주는 신호가 된다. 골반이 흔들리거나 무릎 뒤쪽이 당기면 안장이 너무 높은지, 무릎 앞쪽이 눌리는 듯하면 안장이 지나치게 낮거나 앞으로 나와 있는지 확인한다. 손가락이나 손바닥이 저리면 핸들까지의 거리가 멀거나 낮은지, 안장이 앞으로 기울어 상체가 밀리고 있는지 살펴본다.
다만 통증 하나만으로 원인을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한 번에 여러 부분을 바꾸면 무엇이 영향을 미쳤는지 알기 어려우므로 안장 높이나 위치를 한 번에 몇 ㎜씩만 조정하고 짧게 시험 주행한다. 회음부나 손발의 감각 저하, 무릎 통증이 조정 후에도 반복된다면 주행을 중단하고 전문 피팅이나 진료를 받는 편이 안전하다.
첫날 목표는 완주가 아니라 ‘편하게 돌아오기’…평탄한 길에서 60분부터
첫 라이딩은 장거리 완주보다 평탄한 길에서 출발과 정지에 익숙해지고, 돌아올 체력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이미지=AI로 생성)
자전거를 골라 몸에 맞게 조정했다면 곧바로 장거리 코스에 나가기보다 기본 조작과 점검부터 익혀야 한다. 출발 전에는 자전거의 뒷바퀴에서 안장과 크랭크, 핸들바를 거쳐 앞바퀴까지 M자 모양으로 살펴보는 ‘M 체크’를 활용할 수 있다.
우선 타이어 공기압과 마모, 유리 조각 같은 이물질을 확인한다. 바퀴를 좌우로 흔들어 고정 상태를 점검하고 안장과 시트포스트가 돌아가지 않는지도 살핀다. 크랭크와 페달, 체인이 부드럽게 움직이는지 확인한 다음 프레임의 균열이나 손상, 핸들바와 스템의 유격을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앞뒤 브레이크가 각각 작동하고 레버가 핸들바에 닿을 정도로 깊게 들어가지 않는지 확인한다.
첫 주행은 한산한 주차장이나 평탄한 공간에서 시작한다. 10분 정도 출발과 정지, 저속 직진과 회전을 연습하고 앞뒤 브레이크를 함께 사용해 부드럽게 멈추는 감각을 익힌다. 이후 교차로나 급경사가 적은 길에서 20~30분 달린 뒤 몸의 불편과 자전거 상태를 확인한다. 출발지에서 30분가량 달렸다면 같은 길로 돌아오는 방식이 적당하다.
처음부터 평균속도나 주행거리를 목표로 삼을 필요는 없다. 첫날의 성공 기준은 멀리 간 거리가 아니라 통증 없이 출발지로 돌아왔는지, 원하는 지점에서 안정적으로 멈출 수 있었는지다. 다음날 무릎과 허리, 손목 상태까지 확인한 뒤 주행 시간과 거리를 늘려야 한다.
도로교통법상 자전거는 ‘차’로 분류된다. 자전거도로가 설치돼 있으면 자전거도로를 이용하고, 일반도로에서는 우측 가장자리로 통행해야 한다. 자전거횡단도가 없는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자전거에서 내려 끌고 가야 한다. 보행자 겸용도로에서는 속도를 줄이고 충분한 거리를 두고 지나야 한다.
안전모와 앞뒤 라이트, 밝거나 반사 소재가 있는 옷도 필요하다. 휴대전화를 보거나 이어폰을 낀 채 주변 소리를 차단해서는 안 되며 음주 후에는 자전거를 타지 않아야 한다. 물과 신분증, 휴대전화, 작은 공기주입기와 펑크 수리 도구를 챙기고 혼자 달릴 경우 가족이나 지인에게 예상 코스와 복귀 시간을 알려두는 것이 좋다.
가을에는 기온만큼 노면도 확인해야 한다. 젖은 낙엽은 타이어와 지면 사이의 마찰을 떨어뜨려 미끄러짐을 유발할 수 있다. 낙엽이 쌓인 굽은 길에서는 급하게 방향을 바꾸거나 앞브레이크만 강하게 잡지 말고 속도를 미리 줄여야 한다. 해가 짧아지는 시기인 만큼 예상보다 늦게 돌아올 상황에 대비해 낮에도 라이트를 챙기는 편이 안전하다.
올가을 초보자에게 좋은 첫 라이딩 코스
유명한 자전거길이라고 해서 전 구간을 완주할 필요는 없다. 초보자에게는 경사가 적고 길을 찾기 쉬우며 체력이 떨어졌을 때 중간에 돌아올 수 있는 왕복·순환형 구간이 적합하다.
지역·코스
초보자 추천 방식
장점
주의할 점
서울 한강 자전거길
여의도나 반포에서 출발해 30분 뒤 같은 길로 회차
오르막이 적고 길이 넓으며 접근성이 좋음
주말에는 보행자와 빠른 자전거가 많아 추월 주의
인천 아라자전거길
검암역 인근에서 진입해 5~8㎞ 지점에서 회차
직선 구간이 많고 길을 찾기 쉬움
전체 구간은 편도 21㎞이므로 첫날 왕복 완주 욕심은 금물
경기·강원 북한강 자전거길
춘천역에서 진입해 신매대교 방향으로 30~40분 달린 뒤 회차
북한강과 의암호 풍경, 철도 접근성, 비교적 낮은 공식 난이도
전체 종주 구간은 70.4㎞이므로 짧게 나눠 타고 강바람 확인
강릉 경포호 산소길
호수 순환 구간을 천천히 한 바퀴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순환형이며 호수·바다 풍경을 함께 감상
관광객과 보행자가 많은 구간에서는 감속
충남 아산 곡교천 자전거길
현충사에서 곡교천 둔치까지 7.99㎞ 주행
초급 코스이며 가을 은행나무길과 연계, 공영자전거 대여 가능
단풍 절정기에는 보행객이 많아 서행
경북 경주 황룡사 마루길
분황사 네거리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을 거쳐 월정교까지 이동
문화유산을 둘러보며 짧게 쉬어가기 좋음
유적지와 보행자 겸용 구간에서는 속도를 낮추거나 내려서 이동
서울 한강종주자전거길의 공식 전체 구간은 아라한강갑문에서 팔당대교까지 56㎞에 이른다. 길이 넓고 큰 오르막이 적지만 처음부터 전체 구간을 목표로 삼기보다는 여의도나 반포처럼 접근하기 쉬운 곳에서 출발해 시간 기준으로 되돌아오는 편이 좋다.
아라자전거길은 아라서해갑문에서 아라한강갑문까지 편도 21㎞다. 운하를 따라 직선으로 이어져 길 찾기는 어렵지 않지만 왕복하면 40㎞가 넘는다. 바람을 등지고 출발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강한 맞바람을 만날 수 있으므로 출발 전 풍향을 확인하고 체력의 절반 이상을 복귀에 남겨둬야 한다.
북한강 자전거길은 남양주 밝은광장에서 춘천 신매대교까지 이어지는 70.4㎞ 종주 코스다. 행정안전부 자전거길 안내에서는 난이도 2단계, 예상시간 약 4시간40분으로 소개하지만 이는 쉬지 않고 달리는 종주 기준에 가깝다. 초보자는 춘천역 2번 출구에서 약 560m 떨어진 자전거길로 진입해 신매대교 방향의 평탄한 수변 구간을 달리다 30~40분 뒤 돌아오는 방식이 부담이 적다. 경춘선이나 ITX-청춘을 이용해 접근할 경우에는 열차별 자전거 휴대 규정을 미리 확인해야 한다.
강릉 경포호 산소길은 자전거길과 보행로가 나란히 이어지고 출발 지점으로 돌아오는 순환형이라는 점이 장점이다. 길을 잃을 가능성이 낮고 경포호와 주변 산줄기, 바다 풍경을 함께 볼 수 있다. 다만 관광객이 많은 시간에는 속도를 내기보다 호수를 둘러보는 생활형 라이딩에 맞춰야 한다.
아산 곡교천 자전거길은 현충사에서 곡교천 둔치까지 이어지는 7.99㎞ 초급 코스다.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드는 가을 풍경을 볼 수 있고 공영자전거와 안전 장비를 빌릴 수 있어 자전거를 구입하기 전에 라이딩을 체험해보기 좋다. 단풍 절정기에는 은행나무길 주변에 사람이 몰릴 수 있으므로 혼잡 구간에서는 내려서 끌고 가는 것이 안전하다.
경주에서는 분황사 네거리에서 국립경주박물관을 지나 월정교로 이어지는 황룡사 마루길을 활용할 수 있다. 여러 유적지가 가까워 한 번에 오래 달리기보다 짧게 이동하고 쉬기를 반복하기 좋다. 다만 유적지 주변은 보행자가 갑자기 진로에 들어올 수 있으므로 운동 속도보다 관광형 라이딩에 맞춰야 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자전거 자유여행 대표코스 60선’에서는 코스별 이동 경로를 담은 GPX 파일을 제공한다. 출발 전에 전체 거리와 경사, 복귀 교통편을 확인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다만 자전거길은 공사나 행사, 집중호우 이후 복구 상황에 따라 우회하거나 통제될 수 있으므로 출발 당일 지자체와 자전거길 안내 정보를 다시 확인해야 한다.
첫 라이딩 전 최종 점검
□ 내가 주로 달릴 노면에 맞는 자전거인가 □ 제조사 권장 프레임 크기와 허용 총중량을 확인했는가 □ 뒤꿈치를 페달 아래에 댔을 때 다리가 거의 펴지는가 □ 페달을 돌릴 때 골반이 좌우로 흔들리지 않는가 □ 팔꿈치가 살짝 굽고 손목이 과도하게 꺾이지 않는가 □ 앞뒤 브레이크와 변속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는가 □ 타이어 공기압과 바퀴 고정 상태를 확인했는가 □ 안전모와 라이트, 물, 휴대전화, 수리 도구를 챙겼는가 □ 출발한 거리만큼 되돌아올 체력을 남겼는가 □ 비·강풍·공사·통제 구간을 출발 전에 확인했는가
첫 라이딩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도, 장비 가격도, 완주 인증도 아니다. 자전거를 안정적으로 멈추고 몸의 불편을 알아차리며 출발한 곳으로 안전하게 돌아오는 것이 먼저다. 이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자신에게 맞는 속도와 거리, 좋아하는 길의 형태도 자연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자전거의 종류가 어렵게 느껴졌던 초보자에게 진짜 ‘첫 자전거’가 결정되는 순간은 매장에서가 아니라, 통증 없이 첫 코스를 돌아온 뒤일지 모른다.
달력에는 어느새 ‘입추’라는 두 글자가 놓였다. 실제 날씨보다 달력이 먼저 가을을 데려온 셈이다. (이미지=AI로 생성)
햇볕은 여전히 뜨겁고 밤에는 에어컨이 쉬지 않고 돌아간다. 거리의 옷차림도, 휴가지의 풍경도 아직 한여름에 머물러 있다. 그런데 달력에는 어느새 ‘입추’라는 두 글자가 놓였다. 실제 날씨보다 달력이 먼저 가을을 데려온 셈이다.
올해 입추는 8월 7일이다. 입추는 대서와 처서 사이에 드는 24절기의 열세 번째 절기로, 태양이 황경 135도에 이르는 때를 가리킨다. 이름에는 ‘가을에 들어선다’는 뜻이 담겼지만, 이날을 기점으로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는 것은 아니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도 입추는 완성된 가을을 맞는 날이라기보다 김장용 무와 배추를 심고 다가올 계절을 준비하기 시작하는 생활의 기준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입추는 아직 보이지 않는 계절의 변화를 먼저 감지하는 날에 가깝다. 여름의 끝을 기억하는 소설, 자연의 속도로 시간을 읽는 산문, 지나온 삶을 돌아보게 하는 이야기까지. 가을의 문턱에서 다시 펼쳐볼 여섯 권을 골랐다.
여름이 남아 있는 동안 가을은 시작된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마쓰이에 마사시, 비채, 2016)
계절은 달력이 넘어간다고 곧바로 사라지지 않는다. 어떤 여름은 한 장소의 빛과 냄새에 남고, 어떤 시간은 그곳을 떠난 사람의 기억 속에서 뒤늦게 완성된다.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이처럼 한 계절이 사람과 공간에 머무는 방식을 섬세하게 포착한 소설이다.
신입 건축가 사카니시는 노건축가 무라이 슌스케가 이끄는 설계사무소에 들어간다. 이들은 여름 동안 산속 별장에 머물며 국립현대도서관 설계 공모를 준비한다. 사무소를 여는 연필 깎는 소리와 숲 냄새를 머금은 바람, 갓 구운 스콘과 목재의 질감이 이어지는 가운데 건축가들은 건물이 주변 자연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소설은 극적인 사건을 빠르게 밀어붙이기보다 사람이 일하고 배우며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을 천천히 쌓아 올린다. 건축은 자신의 이름을 남기기 위한 거대한 기념물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과 주변 풍경을 위한 그릇이 된다. 젊은 건축가가 스승의 태도를 지켜보며 성장하는 과정 역시 눈에 띄는 변화보다 오랜 관찰과 반복을 통해 이뤄진다.
2016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이 작품은 2026년 새로운 디자인의 라이트에디션으로 다시 출간됐다. 입추가 여름을 단숨에 밀어내는 날이 아니듯, 이 소설의 여름도 끝났다는 선언 뒤에 오래 남는다. 계절은 지나가지만 그 계절에 배운 삶의 태도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조용히 일깨우는 작품이다.
-‘늦여름’ 1·2(아달베르트 슈티프터, 문학동네, 2011)
여름이 끝나갈 무렵 잠시 되돌아오는 따뜻한 날들을 ‘늦여름’이라 부른다. 아달베르트 슈티프터의 장편소설 ‘늦여름’에서 이 말은 자연의 한때이면서 동시에 사람이 인생의 경험을 통해 성숙해 가는 시간을 뜻한다.
자연과학에 관심을 가진 청년 하인리히는 여행을 하던 중 폭풍을 피해 한 저택을 찾는다. 그러나 저택의 주인 리자흐는 비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의 판단이 자연을 오래 관찰한 경험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하인리히는 이후 저택을 거듭 방문하며 새로운 세계를 만난다.
리자흐의 집에서는 정원과 농장, 가구와 그림, 책과 조각이 무질서하게 늘어서지 않는다. 자연과 예술, 노동과 생활이 각자의 자리를 지키며 하나의 조화를 이룬다. 하인리히는 이곳에서 지식을 쌓는 데 그치지 않고 사물을 오래 바라보는 법과 타인을 배려하는 태도, 자신의 감정을 이해하는 방법을 배운다.
두 권을 합쳐 900쪽에 가까운 긴 소설이며 전개 역시 느리다. 그러나 바로 그 느림이 작품의 중심이다. 사람의 성장도 계절의 변화처럼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지 않는다. 정밀한 자연 묘사와 인간 내면의 발전을 함께 그린 ‘늦여름’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와 더불어 19세기 독일어권 문학을 대표하는 성장소설로 평가받는다. 폭염 속에서 이미 다음 계절을 알리는 입추처럼, 성숙의 조짐은 삶이 크게 달라지기 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달력 대신 풍경으로 계절을 읽는 사람들
-‘자전거여행’ 1·2(김훈, 문학동네, 2014)
계절을 가장 먼저 알아채는 것은 달력보다 몸일지 모른다. 자전거를 타고 길을 오르다 보면 맞바람의 온도가 달라지고, 강가의 풀빛과 논의 냄새가 변한다. 자동차 안에서는 순식간에 지나갔을 풍경도 페달을 밟는 사람 앞에서는 속도를 늦추며 모습을 드러낸다.
김훈의 ‘자전거여행’은 저자가 전국의 산과 강, 갯벌과 포구를 자전거로 지나며 쓴 기행산문이다. 김포평야와 남양만, 섬진강과 소백산맥을 통과하는 길 위에서 자연의 생태와 지역의 역사,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노동이 한 문장 안에서 만난다. 아름다운 경치를 감상하는 데 머물지 않고, 한 풍경이 만들어지기까지 쌓인 지리적 시간과 사람의 삶을 함께 들여다본다.
자전거는 여행자를 자연의 바깥에 세워두지 않는다. 오르막의 경사와 바람의 저항, 땀과 갈증을 온몸으로 통과하게 한다. 그렇게 몸이 풍경에 개입하는 순간 계절은 배경이 아니라 직접 겪는 현실이 된다. 꽃이 피고 지는 속도, 강물이 흐르는 방향과 바다의 밀물과 썰물이 각 지역 사람들의 생업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도 드러난다.
입추에 이 책을 다시 읽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계절의 변화는 기온계에 표시되는 숫자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해가 지는 시간이 조금 빨라지고, 저녁 바람의 결이 달라지고, 길가 식물의 색이 미세하게 바뀌는 순간을 몸으로 알아차릴 때 비로소 가을은 시작된다.
-‘월든’(헨리 데이비드 소로, 은행나무, 2021)
1845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미국 매사추세츠주 콩코드의 월든 호숫가에 직접 오두막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는 약 2년 2개월 동안 자연의 사계절을 통과하며 자신이 먹고 자고 일하는 데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관찰했다. ‘월든’은 그 생활을 바탕으로 인간의 자유와 노동, 자연과 문명에 관해 쓴 기록이다.
소로의 실험은 세상을 등지고 혼자 살아남으려는 도피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가 당연하다고 요구하는 소비와 노동의 방식에서 한 걸음 떨어져 자신의 삶을 스스로 검토하려는 시도였다. 그는 작은 집을 짓는 비용부터 먹을거리를 마련하는 과정까지 기록하며 더 많은 물건을 소유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에 내주는 삶이 정말 풍요로운지 묻는다.
월든 호수의 얼음이 녹고 숲의 색이 바뀌는 과정은 인간이 정한 일정과 무관하게 움직인다. 자연의 시간 앞에서 인간의 조급함은 작아진다. 가을은 여름을 실패하게 만드는 계절이 아니며, 겨울 역시 생명의 끝이 아니다. 계절마다 해야 할 일이 다르고, 멈춰 있는 듯한 시간에도 다음 변화가 준비된다.
입추는 새로운 계절용 물건을 장만하기 전에 하반기의 삶에서 무엇을 덜어낼지 생각해 볼 기회이기도 하다. 소로의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계절을 맞는다는 것은 옷장을 바꾸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가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를 다시 살피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가을은 끝이 아니라 돌아볼 시간이 시작됐다는 뜻
-‘가을’(앨리 스미스, 민음사, 2019)
앨리 스미스의 ‘가을’은 단풍과 낙엽을 아름답게 그려낸 전통적인 계절소설과 거리가 있다. 작품이 바라보는 가을은 익숙했던 질서가 흔들리고 사회의 균열이 드러나는 시기다. 자연의 계절은 순환하지만 인간 사회는 이전과 같은 자리로 쉽게 돌아가지 않는다.
소설의 중심에는 서른두 살의 엘리자베스와 101세 노인 대니얼이 있다. 두 사람은 어린아이와 노인으로 처음 만나 세대와 나이의 차이를 넘어선 우정을 이어온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대니얼 곁에서 엘리자베스는 그와 나눴던 대화와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린다. 이들의 기억 사이에는 예술과 사랑, 노화와 죽음, 영국 사회의 변화가 겹쳐진다.
‘가을’은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국민투표 이후의 사회를 빠르게 소설에 담아낸 작품이다. 국경과 정체성, 외국인 혐오와 정치적 분열을 다루면서도 작품은 냉소에만 머물지 않는다. 서로 다른 세대의 두 사람이 오랫동안 쌓아 온 관계와 예술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힘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앨리 스미스의 ‘계절 4부작’ 첫 권으로, 맨부커상 최종 후보에도 올랐다.
가을은 풍성한 수확의 계절인 동시에 잎을 내려놓는 계절이다. ‘가을’은 무엇이 사라지고 있는지를 바라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분열의 시기에 우리가 끝까지 지켜야 할 관계와 태도가 무엇인지 묻는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회 역시 조금씩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동시대의 계절소설이다.
-‘남아 있는 나날’(가즈오 이시구로, 민음사, 2021)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은 인생의 가을에 도착한 한 남자가 자신의 지나온 시간을 돌아보는 소설이다. 영국 귀족 저택 달링턴 홀에서 평생 집사로 살아온 스티븐스는 새 주인의 권유로 며칠간의 자동차 여행을 떠난다. 여행의 목적지는 과거 함께 일했던 켄턴 양이 사는 곳이다.
스티븐스는 ‘위대한 집사’가 되기 위해 개인의 감정과 판단을 억제해야 한다고 믿었다. 아버지가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맡은 업무를 계속했고, 켄턴 양에게 품었던 감정도 직업적 품위라는 이름 아래 외면했다. 자신이 섬긴 달링턴 경의 정치적 판단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 때조차 충성하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고 여겼다.
그러나 여행길에서 기억을 하나씩 꺼내 놓을수록 그가 지켜왔다고 믿은 품위의 다른 얼굴이 드러난다. 충성은 때로 책임을 회피하는 명분이 됐고, 절제는 사랑을 잃게 만든 침묵이 됐다. 스티븐스는 너무 늦은 시점에 자신이 무엇을 놓쳤는지 깨닫는다.
1989년 부커상을 받은 이 작품이 허무와 후회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 지나간 낮이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저녁이다. 계절로 치면 스티븐스의 삶은 분명 가을에 접어들었지만, 그에게도 다른 사람과 농담을 나누고 새로운 방식으로 살아볼 시간은 남아 있다. 가을을 쇠락이 아니라 지난 선택을 돌아보고 남은 삶의 방향을 다시 정하는 계절로 읽게 하는 작품이다.
입추의 ‘입’은 가을이 완성됐다는 뜻이 아니라 이제 그 문턱에 들어선다는 뜻이다. 한낮의 열기는 그대로지만 해는 조금씩 짧아지고,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는 식물과 바람이 다음 계절을 준비한다.
책을 읽는 일도 이와 닮았다. 아직 닥치지 않은 시간을 미리 살아보고, 지나간 계절에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의미를 뒤늦게 발견하게 한다. 가을은 선선한 바람과 함께 어느 날 갑자기 도착하지 않는다. 달력이 먼저 데려온 계절의 문턱에서 책을 펼치는 순간, 보이지 않던 변화는 비로소 문장이 되어 모습을 드러낸다.
*이주의 신간*
성공 신화의 잿더미에서 되살아난 여자들의 이야기 :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박상영, 래빗홀, 2026)
‘대도시의 사랑법’과 ‘1차원이 되고 싶어’ 등을 통해 동시대의 사랑과 관계를 그려온 박상영이 5년 만의 신작 장편소설로 돌아왔다. 2026년 7월 출간된 ‘지푸라기 왕관을 쓴 여자’는 작가가 처음 본격적으로 도전한 미스터리 스릴러다.
평범한 회사원인 재일 한국인 여성 마츠노 하나는 요코하마에서 도시락 가게를 운영하던 어머니를 화재로 잃는다. 어머니가 임종 직전 남긴 말은 한국 대기업 총수 윤동주 회장을 찾아가라는 것이었다. 하나는 기자로 일하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한국으로 건너오고, 어머니와 윤동주 회장, 재벌가를 둘러싼 오랜 비밀을 추적하기 시작한다.
소설은 방화 사건의 진실을 좇는 미스터리 형식을 취하면서 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어진 한국 경제사의 변화를 함께 통과한다. 기업의 성장과 경영권 승계를 둘러싼 욕망, 그 과정에서 지워진 여성들의 삶, 성공 신화 이면의 담합과 부패가 여러 인물의 증언과 기록을 통해 드러난다.
박상영은 사랑을 낭만적인 구원으로만 그리지 않는다. 한 사람에게 구원이었던 관계가 다른 사람에게는 오래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될 수 있다는 모순을 파고든다. 기존 작품의 날카로운 관계 묘사를 유지하면서도 역사와 재벌 서사, 방화 사건과 복수극을 결합해 작가의 새로운 변화를 확인할 수 있는 신작이다.